읍내마을
가옥리/내도리/읍내리/당산리/장백리/용포리/오산리/대차리
소개
면적 79.41㎢, 인구 9,789명(2001)이 거주하는 무주읍은 8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평지가 있는 곳은 덕유산(德裕山)에서 발원하는 남대천의 곡류부에 해당하는 읍내리, 대차리, 앞섬 등지로, 해발고도는 200∼250m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외에 인삼·버섯·약초 재배가 활발하다. 충남·충북·경북·경남 등 4도와 접하기 때문에 교통·상업의 중심지가 되며, 영동·금산·임실·남원·김천·거창 방면으로 통하는 지방도가 이곳에서 분기한다. 대전과 가까워서 전주보다 대전의 영향이 크며, 남쪽에 위치한 덕유산국립공원(무주구천동)의 입구에 해당하여 관광객이 많이 모인다.
문화유적
무주 한풍루 (전라북도유형문화재 19호 · 전북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1193-2)
무주 한풍루는 전주의 한벽당, 남원의 광한루와 더불어 삼한(三寒)의 하나로서, 호남의 제1루라고 칭한 기록이 있다. 조선 선조 25년(1592)에 왜군의 방화로 소실되었던 것을 선조 32년(1599)에 현감 임환이 다시 지었고, 정조 7년(1783)에 현감 임중원이 중수하였다. 그후 일제시대에 불교 포교당으로 사용되다가 충북 영동으로 이전되었는데, 1971년에 현 위치에 다시 옮겨 지었다. 1층 정면이 3칸, 측면이 4칸에 2층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 특이하여 문화재로서 가치가 큰 누각이다. 한풍루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여 어린이놀이터, 게이트볼 등 각종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는 휴식공간으로 각광받는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로 무주공설운동장 옆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공원으로 조성되어져 있고 반딧불축제가 이 곳 한풍루를 중심으로 치러진다.
북고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시도유형문화재 183호 · 무주읍 읍내리 520 소재)
무주읍 읍내리 향로산(香爐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북고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고찰이다. 주불당인 극락전의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 아미타여래상은 조선시대인 1657년(효종 8) 승일·처영·도잠 등이 조성한 목조 좌불이다. 크기는 높이 73㎝, 무릎너비 54㎝이며 1736년 3월, 1928년 4월, 1984년 10월의 세 차례에 걸쳐 개금(改金)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북고사 신중탱화(神衆幀畵) (시도유형문화재 187호 · 무주읍 읍내리 520 소재)
1831년(순조 31)에 장순·윤관(允寬)·호묵·민훈(敏訓)이 득남을 기원하며 조성한 것으로, 북고사 극락전 오른쪽 불단 위 유리장 안에 모셔져 있다. 가로 125㎝, 세로 130㎝의 삼베에다 적색과 녹색 위주로 두껍게 채색하여 다소 무거운 분위기를 풍긴다. 인물의 형태나 구도·색채 등이 전형적인 19세기 전반기 불화의 요소를 잘 갖추고 있으며, 조성연대와 내력이 남아 있어 19세기 불화의 자료적 가치가 크다.
구상화강편마암 (천연기념물 제249호)
본래는 무주읍 오산리 왕정마을 하천 바닥에 전석으로 있었던 것을 무주군청으로 옮겨 보호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이 암석은 1928년 영국의 지질학자 홀머스(A.Holmas)가 이곳에서 처음 발견한 것인데 핵을 이룬 구상물질이 화강암석에 박혀 암석의 표면이 마치 호랑이 무늬를 닮았다. 이에 사람들은 이 암석을 호랑이 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가볼만한 곳
무주 한풍루 (전라북도유형문화재 19호 · 전북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1193-2)
무주 한풍루는 전주의 한벽당, 남원의 광한루와 더불어 삼한(三寒)의 하나로서, 호남의 제1루라고 칭한 기록이 있다. 조선 선조 25년(1592)에 왜군의 방화로 소실되었던 것을 선조 32년(1599)에 현감 임환이 다시 지었고, 정조 7년(1783)에 현감 임중원이 중수하였다. 그후 일제시대에 불교 포교당으로 사용되다가 충북 영동으로 이전되었는데, 1971년에 현 위치에 다시 옮겨 지었다. 1층 정면이 3칸, 측면이 4칸에 2층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 특이하여 문화재로서 가치가 큰 누각이다. 한풍루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여 어린이놀이터, 게이트볼 등 각종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는 휴식공간으로 각광받는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로 무주공설운동장 옆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공원으로 조성되어져 있고 반딧불축제가 이 곳 한풍루를 중심으로 치러진다.
면내마을
가당리/고창리/굴암리/대소리/대유리/장안리
소개
면적 69.98㎢, 인구 1,882명(2001)이 거주하는 부남면은 6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 조정산(鳥頂山:799m) 등의 산지를 경계로 무주읍, 적상면, 서쪽으로 지장산(智藏山:723m) 등을 경계로 진안군과 충청남도 금산군, 남쪽으로 진안군 동향면, 북쪽은 충남 금산군에 접한다. 800m 고도의 산지 중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계류(溪流)와 동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금강 상류 주변에 해발고도 200∼350m의 평지가 있을 뿐 대부분 산지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외에 인삼이 많이 재배된다. 교통은 금산~무주를 잇는 국도와 진안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있어, 충남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문화유적
송계원 효자문
효자 송계원은 일찍이 부모를 섬기는 정성이 지극하여 인정이 메마른 세상이 훈훈한 인정을 꽃피웠던 인물이다. 늙으신 부모가 겨울에 원하는 수박, 잉어를 구해다 드렸다고 전한다. 그 당시만 해도 도저히 불가능했던 상식 밖의 일들이지만 공의 효심 앞에는 모두가 다 숙연한 마음에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어두운 밤길을 따라 집을 찾아갈 때는 어김없이 호랑이가 나타나 불을 밝혀 주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가볼만한 곳
부남강변유원지
진안 감동마을을 돌아나온 금강천 마을이 섬소마을에서 시작하여 대소,대유,굴암리를 구비쳐 흐르며 장장 13.5Km의 강변을 온통 유원지로 만들고 하류를 향해 흘러 간다. 부남의 중심부를 구비치는 금강천은 금강 최상류에 속하여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청정수로써 맑은 물에서만 볼 수 있는 쏘가리, 꺽지, 어름치, 모래무지, 자가미등이 서식하고 있는가 하면 강변에 늘어선 백사장과 기암절벽들이 절경을 이루어 가는 곳마다 유원지이다. 특히 여름철 피서 인파가 많은 곳은 대소마을 강변을 비롯하여 봉길마을 백사장, 한티마을강변, 상굴마을강변, 하굴암마을 백사장 등이다. 또한 상굴암마을 건너편으로 병풍처럼 둘러친 기암절벽과 하굴암마을 건너편 황새목 절벽, 대티마을 상사바위, 봉길마을 각시바위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경관이다.
면내마을
괴목리/방이리/북창리/사산리/사천리/삼가리/삼유리/포내리
소개
면적 135.89㎢, 인구 3,386명(2001)이 거주하는 적상면은 8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덕유산(1,614m)의 북쪽 사면에 위치하며, 동쪽은 설천면, 서쪽은 부남면, 남쪽은 오두치(烏頭峙 590m) 등을 경계로 안성면, 북쪽은 무주읍에 각각 접한다. 중앙에 적상산(l,034m)이 있고, 그 동쪽과 서쪽에서 금강의 상류인 남대천의 지류가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이들 계류의 주변에 해발고도 200∼400m의 좁은 평지가 있을 뿐, 대부분 산지이다. 영세한 주곡농업 외에 인삼·잎담배·약초·산나물·버섯 등의 특산물이 생산된다. 적상산에는 산성이 축조되었으며 안국사(安國寺)·호국사(護國寺) 등의 절이 있다. 특히 적상산성은 조선시대의 사고(史庫) 중 임진왜란 때에도 유일하게 피해를 면한 적상사고가 있었던 곳이다. 진안∼안천(顔川)∼무주의 구도로와 진안∼장계(長溪)∼무주의 신도로가 면의 동부와 서부를 통과한다.
문화유적
안국사 극락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42호)
안국사는 1277년(충렬왕 3) 월인화상(月印和尙)이 창건한 절로서 해발 1,034m의 적상산(赤裳山) 분지에 있는 적상산성의 유일한 고찰이다. 극락전은 천불전(千佛殿)·부도전(浮屠殿)·산신각(山神閣)과 함께 안국사에 현존하는 당우이다. 1613년(광해군 5)에 중건하였고, 1864년(고종 1)에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베지붕 건물이다. 극락전 안에는 제작연대를 알 수 없는 높이 10.75m, 너비 7.25m의 괘불(掛佛)이 있는데(안국사 영산회괘불탱:보물 1267) 표면은 비단, 뒷면은 마(麻)로 되어 있다. 천재지변을 막아 주는 이 지방의 신앙물로 전해진다. 의겸(義謙)을 비롯하여 5명의 비구니가 공동 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적상산성(사적 146)
고려말 공민왕 23년(1374) 삼도통도사 최영장군이 제주를 토벌하고 서울로 오르는 길에 이곳을 지나다가 사면이 깍아세운 듯한 암벽으로 둘러쌓여 천혜의 요새를 이룬 준험함에 감탄하고 훗날을 대비하여 성을 쌓을 것을 왕에게 건의한 바 있었다. 그 후 조선 시대에 이르러 산성을 수축하고 사고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국사를 지켜왔던 유서깊은 사적지이다.
적상산성 호국사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85 · 적상면 괴목리 1602)
적상면 괴목리 적상산의 호국사지(護國寺址)에 있는 조선시대의 비. 직사각의 농대석(籠臺石) 사면에 안상을 배치하고 좌우에 구름무늬를 조각하였다. 중앙에는 4개의 여의두문(如意頭紋)을 조각하여 돌출시켰으며 상두면에도 복련(覆蓮)을 새겨 넣었다.
적상산 사고지(적상산 산정호수 옆)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때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한 전국의 사고가 불에 탄 후, 춘추관을 제외한 정족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 등에다 새로운 사고를 설치하게 되었으나, 당시 우리나라 북방이 위태하여 광해 6년(1614) 천혜의 요새로 이름난 무주의 적상산에다 실록전을 세우고 묘향산의 실록을 옮기게 되었고 인조 19년(1641) 선원각을 세워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을 보관하게 되었다. 그후 1910년 일본에 의해 사고가 폐지될 때 까지 300여년간 국가의 귀중한 국사를 보존했던 우리나라 5대사고 중 하나였다.
가볼만한 곳
부남강변유원지
적상면 삼유리 무주~진안간 30번 국도의 조금재터널 부근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의 산길 주변에는 아직도 늦반딧불이를 흔히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엔 꽃반딧불이,북방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애반딧불이,늦반딧불이, 왕꽃반딧불 등 7종의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애반딧불이와 늦반딧불이가 센 빛을 내고, 나머지는 빛이 아주 약하다. 적상면 상유마을 산길엔 늦반딧불이가 많이 서식하는데, 8월중순~9월중순의 밤 7~9시에 시간당 20~35마리씩 출현, 밤하늘을 환상적인 빛을 마술을 펼쳐보인다. 우리가 흔히 반딧불이로 알고 있는 것은 애반딧불이다. 늦반딧불이는 초여름 애반딧불이가 사라진 뒤 나타나는 종류로 애반딧불이보다 몸집이 크고 빛도 더 밝다. 애반딧불이의 애벌레는 물속에서 다슬기를 먹고 살지만, 늦반딧불이 애벌레는 습한 풀밭에서 민달팽이를 먹고 산다. 애반딧불이 성충은 초여름에 관찰 가능하고, 늦반딧불이의 성충은 초가을까지 볼 수 있다.
적상산(1,034m)
한국 백경중 하나로 손꼽히는 적상산은 사면이 층암절벽으로 둘러 쌓여 가을단풍이 붉게 물들면 마치 여인들의 치마와 같다고 하여 적상이라 이름붙였다. 해발 1,034m의 기봉이 향로봉(1,025m)을 거느리고 천일폭포, 송대폭포, 장도바위, 장군바위, 안렴대 등의 자연명소를 간직한 채 정상 분지의 양수 발전소 상부댐인 산정호수(적상호)와 고색창연한 적산상선, 안국사등 유서 깊은 문화 유적이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안렴대
적상산의 정상 남쪽 층암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로 내려다 보여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한다. 고려때 거란의 침입이 있었을 때 삼도 안렴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 했다고 한다. 또한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 사고 실록을 안렴대 바위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는 유서 깊은 사적지이다.
장도바위
한적상산성 서문아래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이 바위는 고려말 최영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혀 장도를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 갔다는 전설이 있다.
적상사 산정호수
적상산 분지(해발 800m)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양수 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댐으로 적상호라 명명되었다. 무주읍에서 산정호수까지 포장된 도로가 통행되어 드라이브를 즐길수 있고 산정호수를 관광하는 것 외에도 천일폭포, 적상산성, 안국사 등의 명승탐방과 전망대에 올라 원경을 둘러보는 즐거움도 있다. 또한 산 아래에 있는 하부댐을 구경하고 아울러 무주양수 발전소를 견학할 수 있어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면내마을
공정리/공진리/금평리/덕산리/사전리/장기리/죽천리/진도리
소개
면적 97.28㎢, 인구 6,191명(2001)이 거주하는 안성면은 8개 리로 이루어졌다. 특히 안성은 고려때 명신 김신이 이 고장 출신으로 왕명을 받고 원나라에 들어가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왔다 하여 조정에서는 큰상을 내렸고, 1305년 금산은 김신의 고향이라 하여 금주군으로 승격, 안성현은 금주군에 속하게 되었다. 당시 안성현이 관장하던 구역은 일안면의 공정리, 죽천리, 공진리 이안면의 장기리, 죽천리 일부 덕산리,금평리, 횡천면의 두길리, 삼공리, 심곡리, 삼거리였으나 1674년 적상산성 사고의 관리 문제로 무주현이 승격되면서 금산에 속해있던 안성현이 폐현되고 무주부로 예속하게 되어 안성면으로 편제가 되었다가 그후 1914년 전국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안면과 일안면, 상곡면의 일부인 사전리 유가면 일부 진도리를 통폐합하여 옛 금산에 속해 있었을 때의 명칭인 안성으로 하여 면을 편제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문화유적
칠연의총 (전라북도기념물 제27호 · 안성면 공정리 구한말 의병들의 무덤)
1907년 일본의 강압으로 정미칠조약이 체결되고 구 한국 군대가 해산되자 시위대 출신 장교 신명선은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150여 의병을 모으고 덕유산을 근거지로 삼아 무주, 진안, 장수등 여러곳에서 일본군과 싸워 수많은 공적을 남겼다. 1908년 4월 신명선 장군은 안성에 주둔중인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고자 행군하던 중, 계곡에 잠복중이던 일본군의 협공을 받고 대항할 틈도 없이 전대원과 함께 장열하게 전시하여 이곳에 묻혔다.
원통사지 (전라북도 기념물 67호·안성면 죽천리)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때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한 전국의 사고가 불에 탄 후, 춘추관을 제외한 정족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 등에다 새로운 사고를 설치하게 되었으나, 당시 우리나라 북방이 위태하여 광해 6년(1614) 천혜의 요새로 이름난 무주의 적상산에다 실록전을 세우고 묘향산의 실록을 옮기게 되었고 인조 19년(1641) 선원각을 세워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을 보관하게 되었다. 그후 1910년 일본에 의해 사고가 폐지될 때 까지 300여년간 국가의 귀중한 국사를 보존했던 우리나라 5대사고 중 하나였다.
가볼만한 곳
칠연폭포
안성면 통안마을 뒤 덕유산 쪽에 반석으로 형성된 계곡과 그 일대를 칠연암동이라 하는데, 무주구천동에 비해 그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기암괴석과 크고 작은 폭포, 소와 담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작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뒤지지 않는다. 이곳의 대표적인 명소는 칠연폭포로 일곱개의 폭포와 못이 연이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폭포는 위에서 아래로 소와 소 사이를 맑은 물이 완만한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린다. 칠연암동 하류에 있는 용추폭포는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기암절벽과 노송, 정자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고, 칠연폭포 아래쪽 계곡 건너에는 조선 말기 의병장 신명선과 의병들이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하여 묻힌 칠연의총이 있어 함께 둘러볼 만하다.
용추폭포(안성면 공정리 통안마을)
칠연계곡 도슬담에서 맴돌던 물이 흘러 내리다가 우거진 노송사이 층층바위 암벽을 타고 쏟아지는 비폭이 용소로 떨어지며 이르키는 물파래가 장관이다. 무주 (21㎞) ⇒ 안성 (버스편 25분 소요)(5.5㎞) ⇒ 자연학습원
면내마을
관서리/기곡리/길산리/대불리/덕유리/두길리/미천리/배방리/보안리/삼공리/소천리/심곡리/장덕리/청량리
소개
면적 157.89㎢, 인구 5,077명(2001)이 거주하는 설천면은 14개 리로 이루어졌다. 1914년 전국의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풍서면과 신풍면의 일부인 기곡리, 길산리, 청량리를 편입하고 1674년 무주현의 도호부 승격당시 금산군에서 무주로 예속된 안성현 소속이었던 횡천면의 두길리, 심곡리, 삼공리를 통폐합하여 구천동에 구천명의 승려가 살 때 아침저녁으로 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던 쌀뜨물이 이곳까지 칠십리 계곡을 눈과 같이 하얗게 흘러 내렸다 하여 눈설(雪)과 내천(川)자를 써서 설천이라 했다는 전설도 담고 있다.
문화유적
반송 (천연기념물 291호 · 설천면 삼공리 31 소재)
수령< 樹齡 >은 350여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7m, 가슴높이의 둘레가 5.3m이고, 가지의 길이는 15.3m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전국에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는 수종< 樹種 >의 하나로 여러 가지 형태를 지닌 것이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 줄기가 곧게 자라고 옹이가 적은 춘양목이라는 것은 좋은 목재자원 식물< 木材資源 植物 >로 옛날부터 많이 논의< 論議 >되어 왔고 또한 재배생산 <栽培生産> 되어 왔다. 반송< 盤松 >은 소나무를 닮았으나 밑둥에서부터 여러 가지가 나와 수형< 樹形 >이 펼쳐놓은 우산같아서 품종명< 品種名 >이 umbeliformis로 붙여진 것이다. 보통 묘소앞이나 고찰경내< 古刹境內 >에서 볼 수가 있는 아름다운 관상수< 觀賞樹 > 이다. 무주< 茂朱 > 설천면< 雪川面 >의 반송< 盤松 >은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반송이다. 이 반송을 설천< 雪川 >에 살았던 주민< 住民 > 이주식< 李周植 >이라는 분이 지금으로부터 약 150여년전에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옮겨 심었다 한다.
구천동주목 (전라북도 기념물 80호 · 설천면 삼공리)
덕유산 향적봉을 정점으로 하여 8부 능선부터 수많은 주목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고 있다. 고산식물인 이 나무는 윤기가 흐르는 적갈색 껍질을 입고, 짙푸른 녹색잎이 조밀하게 달린 나무가지가원추형의 수형을 이루며, 가을이면 앵두같은 붉은 열매가 달려 더욱 아름답다. 이 고장 사람들은 향목 또는 적목이라고도 불러 이산의 명칭도 향적봉이라 한다.
반딧불이
자연의 빛 반딧불이는 생물 가운데 유일하게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곤충으로 깨끗한 강산에 산다. 우리나라의 주요서식지로는 전북 무주군 남대천 일대(설천면 오산~소천리 일대). 충남 서산시 풍세천 일대. 반딧불이와 그 먹이인 다슬기 서식지는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무주군에서는 97년부터 반딧불이축제를 열어 반딧불이의 중요성을 알리는 한편 비료와 농약의 살포를 줄이고자 친환경농법을 농가에 확산시키고 있다.
가볼만한 곳
칠연폭포
안성면 통안마을 뒤 덕유산 쪽에 반석으로 형성된 계곡과 그 일대를 칠연암동이라 하는데, 무주구천동에 비해 그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기암괴석과 크고 작은 폭포, 소와 담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작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뒤지지 않는다. 이곳의 대표적인 명소는 칠연폭포로 일곱개의 폭포와 못이 연이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폭포는 위에서 아래로 소와 소 사이를 맑은 물이 완만한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린다. 칠연암동 하류에 있는 용추폭포는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기암절벽과 노송, 정자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고, 칠연폭포 아래쪽 계곡 건너에는 조선 말기 의병장 신명선과 의병들이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하여 묻힌 칠연의총이 있어 함께 둘러볼 만하다.
무주리조트 ㄴ(설천면 심곡리 산 43-15)
덕유산 자락에 자리잡은 무주리조트는 2백20만평 규모를 자랑한다. 온가족을 위한 사계절휴양지로 산악형 알프스풍의 특급호텔 티롤을 비롯해 가족호텔, 국민호텔을 구비하고 있어 내방객들에게 안락한 숙박시설을 제공하며 맑은 공기 속에서 다양한 레저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테니스, 등산, MTB와 승마, 동계 올림픽을 치를 수 있도록 구성된 슬로프에서 즐기는 스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테마쇼핑몰 카니발 스트리트에는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1년내내 펼쳐지며 세계 유명 브랜드의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 할 수 있는 아울렛 의류전문 매장에서부터 실용적인 슈퍼마켓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면내마을
금평리/덕지리/삼거리/은산리/증산리/지성리/철목리/현내리
소개
면적 91.23㎢, 인구 2,882명(2001)이 거주하는 무풍면은 8개 리로 이루어졌다. 무풍면의 중심인 현내리(縣內里) 부근은 화강암이 침식·풍화된 해발고도 400∼900m의 분지이고 그 주위는 해발고도 700∼1,000m의 산지이다. 주곡농업 외에 고랭지채소·잎담배 등이 생산된다. 현내리에서 무주·김천·거창 방면으로 통하는 도로가 분기된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에 속했고 현재도 경상도와 접하여 언어·풍속이 영남권에 가깝다. 문화재로는 문효공과 정경부인 영정(전북유형문화재 81), 백산서원(栢山書院:전북문화재자료 160), 분양서원(汾陽書院:전북문화재자료 160), 육영재사우(育英齋祠宇), 무주 전투지(戰鬪地) 등이 있다.
문화유적
백산서원 (전북문화재자료 제160호 ·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167)
백산서원에는 도유형문화재 제81호인 문효공과 정경부인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지금은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 백산사(栢山祠), 정면 1칸, 측면 1칸 맞배지붕 타진사(妥眞祠), 정면 4칸, 측면 1칸 우진각지붕 강당이 위치하고 있으며, 이 서원은 성현에 대한 제사와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으며,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분양서원 (문화재자료 161호 ·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 366-2)
덕유산 향적봉을 정점으로 하여 8부 능선부터 수많은 주목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고 있다. 고산식물인 이 나무는 윤기가 흐르는 적갈색 껍질을 입고, 짙푸른 녹색잎이 조밀하게 달린 나무가지가원추형의 수형을 이루며, 가을이면 앵두같은 붉은 열매가 달려 더욱 아름답다. 이 고장 사람들은 향목 또는 적목이라고도 불러 이산의 명칭도 향적봉이라 한다.
가볼만한 곳
덕유산자연휴양림 (전북 무주군 무풍면 삼거리 산 1번지)
대전이나 거창 등지에서 접근이 용이하며 덕유산 국립공원 인접지역으로 무주구천동 계곡 입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덕유산자연휴양림(744ha)은 낙엽송 및 잣나무 조림목이 울창하고 주변경관이 수려하여 휴식공간 최적지로서 휴양림내 임도는 숲속 자전거 타기를 즐길 수 있고 인근지역에 무주리조트, 덕유산 국립공원, 라제통문, 무주양수발전소,적산산성 등 관광명소가 있어 사계절 이용 가능하다.
* 교통: 고속도로 무주I.C를 나와서 장수방향 적상면을 지나 약 8km 지점 사산 삼거리에서 구천동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약13km정도가면 구천동 계곡입구 설천면 삼공리. 여기서 신풍령(거창쪽) 방향으로 4km 더 가면 도로 왼쪽에 휴양림 입구.
* 휴양림 관리사무소(063-322-1097)
무주 신풍령 약수터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삼거리 산 1번지에 위치한 신풍령약수터는 무주군에서 1994년에 개발하여 먹는 물 관리법 제7조의 규정에 의거하여 지정 관리하고 있는 시설이다.
신풍령 약수터는 무주군민은 물론 구천동 탐방객 및 인근 경남 거창군, 경북 김천시, 대전광역시, 충남지역, 대구광역시 등 여러 지역 사람들이 연중 이용하고 있다. 물맛이 좋기로 널리 알려져 이용객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찾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약수터 주변 환경관리 및 수질검사를 철저히 실시하고 있다. 특히 신풍령 약수터는 수려한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청정 무주를 한껏 뽐내며 찾는 이들에게 몸과 마음 모두를 맑고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자연 쉼터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