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마을
구성리/국동리/내수리/덕암리/도원리/마산리/묵방리/비상리/비중리/세교리/신안리/우산리/원통리/은곡리/입동리/입상리/저곡리/초정리/풍정리/학평리/형동리
소개
면적 55.37㎢, 인구 2만 3215명(2001)이다. 북쪽으로 북이면(北二面), 동쪽으로 괴산군과 청원군 미원면(米院面), 남쪽과 서쪽으로 청주시에 접한다. 21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청원군 지역으로 상당산 서쪽 바깥이 된다 하여 산외일면이라 하였고, 1914년 군면폐합에 따라 북일면이 되었다가 2000년 1월 1일 내수읍으로 승격하였다. 군의 동쪽에 있는 좌구산(座龜山:657m)에서 분기하는 구녀산(九女山:497m)·상당산성(上黨山城:419m)·우암산(牛岩山)을 잇는 낮은 능선을 경계로 북서쪽으로 경사가 완만한 평야가 미호평야(美湖平野)에 연속되어 이루는 충청북도의 곡창지대에서 인근면과 접한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생산이 많고 그 밖에 팥·녹두·감자·고구마 재배와 채소·토란·양배추·마늘·파·고추·사과·복숭아 등의 생산량도 많다. 특히 중부고속도로가 인접하여 읍내에 농공단지외 49개 업체가 조성되어 있고 청주국제공항과 초정약수 등 대규모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마늘·고추 등의 특용작물 생산도 많다. 특히 청주시에 인접하여 사과·배·복숭아 등 과수재배, 젖소·산양·오리 등 가축사육 및 채소재배 중심의 근교농업이 활발하다.
문화유적
비중리 석조일광삼존불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 청원군 내수읍 비중리 209-1번지)
비중리의 속칭 ‘선돌거리’에 있는 일광삼존석불(一光三尊石佛)이다. 하나의 광배 안에 3구(軀) 불상을 함께 부조한 것으로 현재 이 불상은 4조각과 파손된 것을 복원하여 놓았는데 본존의 몸통과 머리부분이 분리되고 우협시보살상 떨어져 나간 것을 수습하여 접합하였으나 좌협시보살상은 아직 찾지 못하였다.
윤관 영정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0호 · 청원군 북이면 내추리 34번지)
고려 문종(文宗) 때 과거에 급제하여 숙종(肅宗) 9년(1104)에 동북면행영 병마도통(東北勉行營 兵馬都統)에 임명되어 여진(女眞)을 정벌하다가 실패하였으나 예종(睿宗) 2년(1107)에 여진정벌 원수(元帥)가 되어 동북계에 있는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아 진국공신(鎭國功臣)이 되었다.
가볼만한 곳
운보의 집(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 428-2)
다섯 겹의 아담한 산이 병풍처럼 에워싼 품안에 삼 만평 규모의 논과밭, 자연이 어우러진‘운보의집’은 작가가 생활해 온 전통양식의 한옥을 중심으로 운보 미술관과 운보공방, 아트샵, 야외 수석공원, 레스토랑 등이 위치하고 있다. 자연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전통과 현대적인 느낌이 공존하고 있으며 복합적인 문화예술 공간으로 개방되어 있다.
* 찾아가는 길: 자가용으로 청주에서 30분 정도의 거리, 청주-초정 간 시내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 된다.
초정약수 (청원군 내수읍 초정리 일대)
초정약수는 ‘약(藥)이되고 병(病)이 낫는다’는 신효(神效)의 물로써 세계광천학회에서 미국의 샤스터, 영국의 나포리나스 와 함께 세계3대 광천수(鑛泉水)로 꼽고 있다. 초정약수는 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세계적인 광천수(F.D.A인정)로 조선 세종대왕 26년(서기 1444년) 3월2일에는 왕이 친히 이곳에 행차하여 60일간 머물면서 안질(眼疾)을 다스렸으며 세조대왕께서도 이곳에서 질병을 치료하였다. 초정리 일대에는 여러 곳에서 광천수가 용출되고 있어 상탕과 하탕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하루 종일 용출량은 약 8,500리터로 추정되고 있다. 유효성분으로는 유리탄산, 칼슘, 나트륨, 중탄산, 칼륨, 마그네슘, 이온이 다량 함유돼 있으며, 그밖에 구리, 철, 망소, 불소, 염소, 이온 등이 들어있다.
* 찾아가는 길: 자가용으로 청주에서 내수 증평방면으로 이동하다가 내수읍의 만남의 광장에서 우회전한다.
광명난농원(충북 청원군 내수읍 세교리)
광명난연구소는 충북 최대의 ‘난연구소’로써 약 2,000여평의 부지위에 조직배양실, 유목 재배사, 동얀난재배사, 서양난재배사, 상설전시장 등 난재배 및 연구시설과 주차장, 식당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재배되는 난은 제주한란, 풍난등 900여종의 동양난과 호접난, 덴드로비움등 10여종의 서양난이 있다. 난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난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특히 난에 관심이 있는 초보자에게는 난에 관한 상담과 감상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다. 청주에서 초정약수방면으로 17km에 위치해 있다.
면내마을
갈산리/관정리/귀래리/무성리/문박리/삼산리/이목리/인경리/지산리/추정리/현암리/호정리
소개
면적 59.56㎢, 인구 2,653명(2001)이다. 북쪽으로 북일면과 미원면, 서쪽으로 가덕면, 남쪽으로 보은군 내북면에 각각 접한다. 면의 북쪽 구녀산(九女山)을 기점으로 동쪽은 인경산(仁景山:457m)·가래산(加來山)·동역골 뒷산(457m) 등이 가로막고 있으며, 서쪽에는 상당산성에서 선도산(仙到山:546m) · 선두산(先頭山:527m) · 백족산(白足山:472m) · 국사봉(局師峰:564m) 등의 준봉이 줄지어 있다. 그 두 산지의 골짜기가 본면의 중앙부를 형성하게 되며, 골짜기의 중심에는 호정천(浩亭川)이 남동쪽으로 흘러 속리천(俗離川)에 합류한다. 산지가 많은 지형적 제약으로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많으며, 고랭지 채소, 고추, 잎담배, 축산 등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교통은 청주~보은을 연결하는 국도가 면의 남부지역을 가로지르고, 청주~보은 간의 거리단축을 위하여 상당산성에서 관정리(官井里)로 연결되는 지방도로가 있다.
문화유적
묵정영당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 · 청원군 낭성면 관정리 430-1번지)
조선 순조 30년(1830)에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공신 1등으로 책록되고 고령부원군에 봉해진 영의정 문충공 보한재 신숙주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으로 매년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에 향사하고 있다. 영정은 영조 25년(1749)에 가덕면 인차리의 구봉영당(九峰影堂)에 있는 원본(보물 제 613호)을 모사한 관복의 전신교의좌상이다.
신중엄 신도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1호 · 청원군 낭성면 관정리 430-1번지)
신중엄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계모와 동생을 성(誠)과 효(孝)로써 극진히 받들어 그 효행이 널리 알려졌다. 벼슬길에 올라 주부(主簿), 감찰직(監察職)에 있을 때는 군민을 교화로 인도하였고, 임진왜란(壬辰倭亂)때는 군량미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은 것을 알고 자신의 재산으로 군량미를 조달하는 등 국난대처에 노력하였다.
과필헌 고가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8호 · 청원군 낭성면 호정리 27-1번지)
과필헌(果必軒) 고가(古家)는 과필헌 신후(申逅, 1708∼1779)가 지은 전통한옥이다. 건물의 구조는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1칸의 건너방을 오른쪽에 앞마루를 둔 2칸의 안방과 부엌이 있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일자(一字)로 된 안채와 그 앞에 중문이 있는 곡간채를 두고, 2칸의 안방과 부엌이 있는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된 사랑채로 되어 있다.
가볼만한 곳
단재 영당 및 묘소 (충북기념물 제90호 ·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305)
<황성신문>기자와 <대한매일신보>주필 등의 언론활동을 통해 민중계몽과 구국운동을 펼치다가 합법적인 애국운동이 불가능해진 1910년에 중국으로 옮겨 광복회, 대한민국임시정부 등에서 활동하다가 1923년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의 부탁으로 작성했으며 한국독립운동사에 찬연히 빛나는 불후의 명문으로 꼽히는 <조선혁명선언>에서 '일본은 조선의 국호와 정권과 생존을 빼앗아간 강도이다. 따라서 이를 타도하기 위한 혁명이 정당한 수단'임을 천명하는 등 민중의 직접 혁명을 주장하는 한편, 1925년 '무정부주의 동방연맹'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1928년 일경에 체포돼 10년형을 선고받고 여순감옥에서 복역 중 1936년 56세를 일기로 "내가 죽으면 시체가 왜놈들 발끝에 차이지 않도록 화장하여 그 재를 바다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순국함.
면내마을
가양리/계원리/구방리/금관리/내산리/대덕리/대신리/미원리/성대리/수산리/쌍이리/어암리/옥화리/용곡리/운교리/운암리/운용리/월용리/종암리/중리리/화원리/화창리/기암리(基岩)/기암리(岐岩)
소개
면적 129.69㎢, 인구 6,996명(2001)이다. 24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 괴산군 청천면, 서쪽으로 내수읍·남성면, 북쪽으로 북일면과 괴산군 증평읍, 남쪽으로 보은군에 접한다. 서쪽에는 구녀산과 인경산, 동쪽에는 남동방향의 산지가 있어 이들 산지 사이를 구룡천·미원천이 각각 남류하여 면의 남단부에서 동류하는 속리천에 합류한다. 구룡천과 미원천 유역에는 하곡평야가 좁고 길게 발달하였으나 경지면적 2,334ha에 논 1,084ha, 밭 1,250ha로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우세하다. 산간 고랭지로 벼농사와 연초·고추·배추를 많이 재배하며 특용작물로 인삼이 있다. 한우·낙농·양돈·양봉·버섯재배 등으로 많은 소득을 올린다. 청주·보은·증평·괴산으로 통하는 국도 및 지방도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
문화유적
청원 신선주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4호 · 청원군 미원면 계원리 435번지)
예로부터 물이 좋기로 이름난 미원지역에서 생산하는 신선주는 함양박씨(咸陽朴氏) 집안에 18대째 약 400여년 동안 전승되고 있는 가양주(家釀酒)로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충청도 도사(忠淸道 都事) 박숭상이 이 마을로 낙향한 후 이 술을 빚는 비법이 전해졌다고 한다.
가볼만한 곳
옥화9경(청원군 미원면 일대)
청주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이곳은 약 12km의 도로를 따라 9개의 경승을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달천천을 따라 펼쳐지는 푸른 계곡과 신비한 전설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제 1경 청석굴(미원면 운암리), 제 2경 용 소(미원면 옥화리), 제 3 경 천경대(미원면 옥화리) , 제 4 경 옥화대(미원면 옥화리), 제 5 경 금 봉(미원면 월용리), 제 6 경 금관숲(미원면 금관리), 제 7 경 가마소뿔(미원면 어암리), 제 8 경 신선봉(미원면 계원리), 제 9 경 박대소(미원면 어암리)
미동산 수목원 (충북 청원군 미원면 미원리 20 )
미동산수목원은 94만 2천평의 부지에 96년부터 5년간 국고지원사업으로 44억원을 투자하여 조성하였고, 지금까지 조성한 속리산 정이품송 후계목을 비롯한 우수 유전자원 보존원과 침엽수, 유실수원등 11개원의 전문수목원에는 560종 318천본의 식물이 식재되어 있다.
옥화자연휴양림 (충북 청원군 미원면 운암리 산61-2)
울창한 산림과 청정 시냇물이 있어 가족단위 이용에 적합하고, 청주 ⇔ 속리산간 도로변에 연접하여 접근이 편리(청주에서 30분거리)하고 청주 주변의 휴양명소 옥화9경과 연접되어있어 휴양지로 최적이다.
면내마을
계산리/국전리/금거리/내암리/노동리/병암리/삼항리/상대리/상아리/수곡리/시동리/인차리/청룡리/한계리/행정리
소개
면적 49.5㎢, 인구 5,358명(2001)이다. 가덕면은 청원군의 남동부에 위치하며 동은 보은군 내북면 서는 남일면 남은 문의면과 보은군 회북면 북은 낭성면과 각각 접하고 있다. 면소재지는 인차리이며 농가 호수는 991 호에 경지면적은 밭이 99.3 ha, 논이 736.4ha 계가 1,135.7ha 이다. 산지지역은 대부분 화강암지대로 침식이 진행되어 서쪽 비탈면에는 곳곳에 하곡평야가 발달되어 쌀·보리를 중심으로 한 농업이 성하다. 원예작물로 딸기·오이·호박·토마토·수박 등을 재배하며, 특용작물로 감·마늘을 비롯해 배·인삼이 많이 생산되며 백족산 주변에서는 표고버섯이 많이 생산된다. 낙농·한우·돼지·닭·사슴 등 축산업도 발달되었다. 교통은 청주~보은을 연결하는 국도가 북부지역을 동서로 가로질러 편리하다.
문화유적
보한재 영정 (보물 제613호 · 충북 청원군 가덕면 인차리 13)
비중리의 속칭 ‘선돌거리’에 있는 일광삼존석불(一光三尊石佛)이다. 하나의 광배 안에 3구(軀) 불상을 함께 부조한 것으로 현재 이 불상은 4조각과 파손된 것을 복원하여 놓았는데 본존의 몸통과 머리부분이 분리되고 우협시보살상 떨어져 나간 것을 수습하여 접합하였으나 좌협시보살상은 아직 찾지 못하였다.
을축갑회도 및 죽림갑계문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 청원군 내수읍 원통리 401번지)
을축갑회도는 숙종12년(1686)에 계원들의 62세가 되는 가을에 중국 당나라 낙양의 기영회(耆英會)의 고사와 같이 화상을 그려 각기 나누어 가진 것으로 계원 7명이 청주 보살사를 배경으로 나란히 앉아 있고 그 앞에 자손들이 시립(侍立)하고 있는 모습을 부모산 부도암의 의인화상(義人和尙)이 그린 기념화(記念畵)이다.
윤관 영정(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0호 · 청원군 북이면 내추리 34번지)
고려 문종(文宗) 때 과거에 급제하여 숙종(肅宗) 9년(1104)에 동북면행영 병마도통(東北勉行營 兵馬都統)에 임명되어 여진(女眞)을 정벌하다가 실패하였으나 예종(睿宗) 2년(1107)에 여진정벌 원수(元帥)가 되어 동북계에 있는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아 진국공신(鎭國功臣)이 되었다.
가볼만한 곳
세천재(문화재 자료 제 29호 . 영동군 매곡면 유전리 536)
이 재실(齋室)은 조선 숙종(肅宗) 16년(1691)에 충주박씨 문중에서 조상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동시에 후손들이 학문을 배우고 탐구하는 곳으로 사용 할 수 있도록 지어진 것이다.
면내마을
가산리/가중리/고은리/두산리/문주리/송암리/신송리/쌍수리/은행리/화당리/황정리/효촌리
소개
면적은 35.19㎢, 인구 9,064명(2001)이다. 12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남쪽으로는 가덕면(加德面), 북쪽으로는 청주시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남이면(南二面)에 접한다. 동쪽 면계에는 좌구산(座龜山:657m)에서 뻗어내리는 상당산맥(上黨山脈)이 선도산(仙到山:546m)·관봉(冠峰)·태봉(胎峰:255m) 등을 일으키고, 그 서사면(西斜面) 산록부를 무심천(無心川)이 북류한다. 무심천 유역에는 곳곳에 충주분지의 일부를 이루는 충적평야가 전개되어 땅이 비옥하고 수리시설이 좋다. 쌀·보리 중심의 주곡농업이 발달하고, 무공해 딸기, 마늘, 시설채소, 포도 등을 특산물로 재배하고 있으며 비육우·육우·돼지·닭·사슴 등 축산업이 성행하고 있다. 그러나 농경지의 택지화로 경지면적이 크게 감소할 전망이다. 청주∼대전 간 국도가 면 중앙부를 달리고, 고은리(高隱里) 삼거리에 보은(報恩)·속리산을 연결하는 국도가 교차하고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
이항희 가옥 (중요민속자료 제133호 · 청원군 남일면 고은리 190번지)
이항희(李恒熙) 가옥은 조선 철종(哲宗) 12년(1831)에 지은 한옥이다. 이 가옥의 가장 큰 특징은 외부공간의 구성과 조경이다. 수령 300∼400년의 회나무와 모과나무·향나무·감나무, 그리고 아담한 중마당 등이 어우러져 전통적 민가의 정원을 보는 듯한 고졸한 느낌이 들게 한다.
한란묘소 및 신도비 (충청북도 기념물 제72호 · 청원군 남일면 가산이 산18번지)
고려의 개국공신인 태위(太尉) 한란(韓蘭, 853~916) 공을 안장(安葬)한 묘소와 그의 위업을 기리는 신도비이다. 묘소는 원래의 모습에서 변형되었지만 고려시대의 묘비(墓碑)와 상석(床石)등이 현존하고, 효종 때의 문인석(文人石)과 용마석(龍馬石)이 보존되어 있다.
체화당사 (충청북도 기념물 제73호 ·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의 기록에 따르면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이 이들 4형제의 남다른 우애를 보고 선조에게 아뢰니 선조가 친히 ‘逮華堂’이란 어필(御筆)을 써서 그 집에 걸도록 하여 당호(堂號)가 되었는데 나중에 그들의 사당인 체화당사가 되었다.
가볼만한 곳
공군사관학교 공군박물관 (충북 청원군 남일면 쌍수리 335-1)
국내 유일의 항공 군사박물관인 이곳은 1979년 3월 서울 대방동에서 개관 현재의 위치로 1985년 12월에 이전하여 현재 총 4,000여점의 자료를 소장, 전시하고 있다. 특히 공군 창설 최초의 항공기인 L-4 연락기 및 적성국 항공기까지 30대의 실물항공기가 5,000여평의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 많은 관람객이 찾고 있으며 어린이에게 좋은 견학지로 각광 받고 있다.
면내마을
가마리/가좌리/갈원리/구미리/구암리/대련리/문동리/비룡리/사동리/산막리/상발리/석실리/석판리/수대리/양촌리/외천리/척북리/척산리/팔봉리
소개
면적 48.90㎢, 인구 6,772명(2001)이다. 동쪽·북쪽으로 청주시와 남일면(南一面), 서쪽으로 충청남도 연기군에 접한다. 19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면내에 저산성 산지(低山性山地)가 크게 발달하여, 산지가 우세하고 경지는 협소한 편이다. 동부에는 국사봉(國師峰), 중앙에는 망일산(望日山)·봉무산(鳳舞山), 서쪽 면계에는 팔봉산(八峰山)이 각각 남북방향으로 세 줄기의 산지를 이루고, 그 골짜기에 좁은 하곡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비교적 넓게 발달한 하곡평야는 면 북서부를 흐르는 금강의 지류 백천(白川) 유역의 평야로서, 땅이 비옥하고 수리시설이 편리하여 주곡농업이 성하다. 1990년 초부터 영지·표고·느타리 버섯 재배농가가 증가하고 있으며 낙농업이 발달해 있다. 면 중앙을 남북으로 경부고속도로가 달리고 있고 면의 동부지역에는 청주~대전 간 국도가 달리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면의 서부에는 고속전철이 공사중에 있다.
문화유적
안심사영산회괘불탱 (국보 제297호 · 청원군 남이면 사동리 271번지)
안심사의 비로전 안에 안치하고 있는 이 괘불은 윗부분 일부에 약간의 손상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색조도 거의 그대로이다. 석가 여래불상을 본존으로하여 그 주위에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을 비롯하여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든 많은 무리들과 제자 및 지방불이 둘러싸고 좌우에는 사천왕상이 호위하고 있는 구도이다.
안심사 대웅전 (보물 제664호 · 청원군 남이면 사동리 271번지)
주존불을 모신 법당이며 목조기와집으로 조선시대 중기의 일반형 건물이다. 신라 혜공왕 11녀(775)에 진표율사가 창건하고 고려 충숙왕12년(1325)에 원명국사가 중건하고, 그 후 조선 인조4년(1626)에 송암대사가 중건하였다고 하는데 연대표 현판은 10여 전 없어졌다. 현존건물은 송암대사가 중건한 것으로 청원군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안심사 세존사리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 · 청원군 남이면 사동리 271번지)
안심사 대웅전의 서편에 놓인 석종형 부도(石鐘形 浮屠)로서 탑비(塔碑)와 함께 잘 보존되어 있다. 이 부도는 신라 혜공왕(惠恭王) 11년(775)에 진표율사(眞俵律師)가 안심사를 창건할 때 석가세존의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부도탑은 조성양식으로 보아 조선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안심사 비로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 청원군 남이면 사동리 271번지)
이 건물의 창건연대는 비로전 안에 걸려던 목판의 중수기(重修記)에 의하여 광해군(光海君) 5년(1623)에 초창되었다가 그 후 세월이 2백여년 지나면서 지붕과 서까래가 퇴락하고 불상이 비바람을 맞을 지경이 되자 여러 사람이 뜻을 합해 헌종(憲宗) 8년(1842)에 중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나 이 중수기는 1982년경에 없어져 행방을 알 수 없다.
동화사 석조비로사나불좌상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68호 · 청원군 남이면 문동리 150번지)
속칭‘남수원절’이라 불리는 동화사의 대웅전안에 주존으로 모셔져 있는 불상으로 광배를 잃고 있을 뿐 거의 완형에 가깝다. 높은 대좌위에 결가부좌한 좌상으로 목이 부러져 있던 것을 복원하여 놓았는데 잘못 복원하여 불두(佛頭)가 오른쪽으로 약간 돌려져 있다. 나발(螺髮)의 머리에는 낮은 육계가 있으나 뚜렷하지 않다.
가볼만한 곳
안심사 (충북 청원군 남이면 사동리 271)
신라 혜공왕 11년 진표율사가 그의 제자 수십여 인을 편안하게 하기위해 안심사라고 명했다고 한다.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사찰, 화려하지도 요란스럽지도 않은 대웅전, 뭔가 넣어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될 완벽한 구도를 갖춘 것이 바로 안심사 특유의 멋이다.
* 찾아가는 길
1) 경부 고속도로 천안 I.C.로 들어와 청주방면으로 약 3km정도 가다가 경부 고속도로 이동 기점 전에서 좌회전하여 약 8km정도 가다가 척북리 삼거리에서 좌회전
2) 청원 I.C. - 우회전 - 청주 가는 갈래길 - 좌회전(린나이 안내판) - 좌회전(안심사 방향) - 안내판
면내마을
가호리/괴곡리/구룡리/남계리/노현리/덕유리/도원리/두모리/등동리/마구리/마동리/묘암리/문덕리/문산리/미천리/산덕리/상장리/소전리/신대리/염티리/품곡리/후곡리
소개
면적 93.17㎢, 인구 5,886명(2001)이다. 22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으로 대전광역시, 동쪽으로 가덕면(加德面)과 보은군, 북쪽으로 남이면(南二面)에 접한다. 동쪽 경계에는 봉화대(峰火臺)·옥쇄봉·샘봉산(461m), 서부지역에는 봉무산(鳳舞山:346m)·구봉산(370m)이 각각 남북 방향으로 이어지며, 남서쪽 면계를 흐르는 금강은 심한 곡류천을 이룬다. 1980년 대청댐 건설로 면 전체 경지면적 1,919ha 가운데 36.7%가 수몰되어 농경지가 급격하게 감소되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1990년부터 지역특화 사업으로 포도·표고버섯·배·복숭아 등의 재배단지와 시설하우스 재배단지 등을 조성하고 집중 육성하고 있다. 석회석 광산지대로 구룡 노현지구에서 석회석을 생산하고 있다. 교통은 청주~대전간 지방도로 506번 도로가 면 중앙부를 관통하여 편리하며, 대청댐이 있어 수운도 편리하다.
문화유적
문산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9호 · 청원군 문의면 미천리 153번지)
문산관은 조선시대 문의면의 객사이다. 객사란 고려와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있던 관사로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전패를 안치하고 초하루와 보름달에 임금이 계신 대궐을 향해 절을 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한편 중앙에서 내려온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되었다.
월리사 대웅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8호 · 청원군 문의면 문덕리 산 5번지)
월리사 대웅전은 이 절의 입구에 있는 사적비에 의하면 조선 효종(孝宗) 8년(1657)에 명현당(明玄堂) 원학대사(元學大師)가 이웃에 있던 신흥사를 옮겨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 시기에 옮겨지은 것으로 보이며 처마 끝의 암막새 기와에 ‘옹정경술(雍正庚戌)’이라는 양각 글씨가 있어 영조(英祖) 6년(1730)에 한차례 중수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문의향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4호 · 청원군 문의면 미천리 220-1번지)
문의향교는 조선시대 문의지방에 있던 관학기관으로 본래는 문의현 서쪽 1리 지점인 지금의 양성산 아래에 있던 것을 조선 광해군(光海君) 1년(1609)에 문의현을 다시 세울 때 향교를 현에서 남쪽으로 3리 떨어진 기산리로 옮겼고 숙종(肅宗) 9년(1683)에 현령 이언유(李彦維)가 땅이 평탄하지 않아 다시 서쪽으로 2리 떨어진 양성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영조대왕태실 가봉의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0호 · 문의 문화재단지 박물관)
영조대왕 태실가봉의궤(英祖大王 胎室加封儀軌)는 청원군 낭성면 무성리에 있는 조선 영조의 태실(胎室)을 가봉(加封)하는데 따른 관련 사실을 적은 필사본의 책이다. 의궤에 의하면 영조의 태는 숙종20년 9월26일에 1등 태봉(一等胎峰)인 충청도 청주목 산내일동면 무쌍리(지금의 무성리) 태봉산 묘좌유향(卯坐酉向)에 낙점되어 다음해9월 28일 진시에 안태되었다.
가볼만한 곳
대청댐 (문의면 소재)
청주에서 문의 방면으로 약 15㎞에 위치하고 있어 자가용으로 약 20분 소요된다. 대청댐행 시내버스가 약 한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다. 국내 최장의 다목적 인공호수인 대청댐은 산간계곡과 어울려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는데 호반주변에는 20년 만에 개방된 청남대를 비롯하여 현암사, 문의향교 등 많은 문화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댐 중턱에는 옛 선인들의 숨결이 담긴 민속문화를 재현시킴으로써 우리 조상들의 삶과 얼을 이해할 수 있는 문화재단지가 어울려 있으며 호수 맞은편에는 용굴과 인공분수대가 있고 연인들의 휴식공간인 도당산공원, 양성산성, 월리사, 문의 체육공원등이 관광 명소이다.
문의문화재단지 (청원군 문의면 문산리 산6-1번지)
문의문화재단지는 청주에서 대청댐 방면으로 약 15㎞에 위치하고 있다. 자가용으로 약 20분 소요되며 문의행 시내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다. 인류문명의 발달과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사라져 가고 있는 우리의 고유 전통문화를 재현하여 조상들의 삶과 얼을 되살리고 배우기 위한 역사의 교육장으로 지난 1997년에 개장하였다. 약 3만3천평 규모의 부지위에 지방유형문화재 제49호인 문산관을 비롯하여 충청북도 지정문화재 7점이 위치하고 있으며 전통가옥, 민속자료전시관등 10동의 고건물과 장승, 연자방아, 성황당 등 옛 생활터전을 재현하여 약 50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되었다. 한편 4천여평의 주차장을 비롯하여 우물, 놀이광장등 편의시설을 갖추어 대청호와 함께 호반의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 문의문화재단지 관리사무소(043-251-3545)
청남대 (청원군 문의면)
1983년 완공된 청남대는 역대 대통령들이 여름휴가를 보내거나, 설휴가를 비롯하여 매년 4~8회씩 이용, 20여년간 총 80여회 4백여일을 이곳에서 보냈다. 휴양중에도 항상 국정에 대해 보고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유지되었으며, 식수원인 대청호를 끼고 있어 최고의 수질정화시설이 운영되었다. 청남대의 처음 이름은 영춘재였다. 2003년 4월 22일 일반인에 개방된 청남대에는 세 개의 정자(초가정, 오각정, 배나무밭정자)가 있는데, 어느 곳에서든 대청호반과 야트막한 산들이 연출하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또 다양한 조경수 4,000여점이 잘 관리되어 있어 나무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또 국내에서 채취한 야생화 130여종이 잘 가꾸어져 있는 야생화원으로 꽃이 피는 시기에는 은은한 한국의 자연미를 감상할 수 있다.
* 청남대 관리사무소(☎043-220-5671~8)
작은용굴분수대 (문의면 상장리 437번지외 4필지)
청주에서 문의소재지 들어서기전 문의삼거리에서 좌측 회남방향에 위치한 작은용굴분수대는 문의면 구룡리 마을 뒤에 있는 석회암 동굴 유적으로 이 굴에서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용굴이라 전해지며 석회암 지대에 발달된 수평동굴로서 크기는 입구너비 260cm, 높이 350m, 길이 60m이며, 입구에서부터 32m되는 곳에 광장이 있다. 작은 용굴은 위치상 청원 두루봉동굴, 큰용굴 그리고 대청댐으로 수몰된 청원 샘골유적과 가까운 거리에 있고 , 금강과도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현재 청원 두루봉동굴, 큰용굴, 샘골유적 등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작은 용굴만이 그 형상을 보존하고 있다.
면내마을
노산리/달계리/매봉리/상삼리/선동리/시동리/시목리/양지리/우륵리/죽암리/죽전리/중삼리/중척리/하석리
소개
면적 43.48㎢, 인구 4,910명(2001)이다. 14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과 북동쪽으로 문의면(文義面), 북서쪽으로 부용면(芙蓉面), 남서쪽으로 금강(錦江)을 끼고 대전 유성구 구측동(九則洞)·대덕구 신탄진동(新灘津洞)과 접한다. 면의 대부분 지역이 노년기 지형으로 잔구성 산지가 크게 발달하여 경지가 협소하다. 동부 경계는 구봉산(370m)을 주봉으로 산맥이 달리고 북서쪽은 노고봉(老姑峰:305m)을 중심으로 산지를 형성하며, 평지는 북부지방에 곡저평야가 다소 발달되어 있다. 경지면적이 적어서 쌀·보리 생산은 빈약한 편이나 대전·청주 등 인근의 대도시를 시장으로 하여 포도 등의 과일류와 무·배추·파·시금치·당근 등 채소류의 생산이 활발하다. 면 중앙에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와 국도가 남북으로 달리고, 남동부의 금강 강변을 따라 청주∼대전 간 지방도가 가로지르며, 서부 면계에는 경부선 철도가 통한다.
문화유적
지선정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1호 · 청원군 현도면 중척리 248번지)
지선정은 조선 광해군 2년(1610)에 지선 오명립이 세운 정자로서 오명립의 호를 따서 지선정이라 하였다. 지금의 정자는 고종 16년에 중건하고 1932년에 보수한 건물로 안에는 우암 송시열이 쓴 ‘충효일생 와차강분‘이란 편액이 걸려 있고, 밖에는 수암 권상하가 쓴 ‘지선정’이란 편액을 달았다.
가볼만한 곳
솔밭공원(현도면 노산리)
대청댐에서 하류쪽으로 약 5㎞ 정도에 위치하며, 대전의 신탄진과 인접하고 있다. 노산솔밭은 대청댐 하류에 위치한 옛 금강나루터로써 40 ~ 50년생의 송림과 금강 백사장이 어우러저 하절기에는 해수욕장을 방불케할 만큼 행락객이 몰리는 강변유원지로써 인근에 금호송어장과 식당촌이 밀집하여 있다. 대청 조정지댐의 강변도로는 연인들의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가 높으며 낚시에도 적합한 곳이다. 이곳은 청원군에서 화장실, 음수대 등 편익시설을 설치하여 이용객의 편의를 돕고 있다. 자가용 이용시 청주에서(약20㎞) 25분 정도 소요 (현도면사무소 ☎ 043-269-5618)
현암사(청원군 현도면 하석리)
현암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기와 건물로써 신라 성덕왕(702-736)때 김선경대사가 창건한 조계종에 속한 고찰이다. 현암사가 위치한 구룡산은 청원군 현도면과 문의면의 경계지역으로 삼국시대에는 삼국의 변방지대로써 전투가 끊이지 않던 곳이다. 지금은 당시의 성곽인 구룡산성의 성석만 남아 유구한 역사의 상혼을 전하고 있다. 현암사의 현재건물은 1988년에 중건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용화전, 산신각, 요사체가 있으며 최근에는 대청호의 호반을 울리는 대형 석종이 제작되어 또 다른 볼거리로 유명하다. 청주에서 대청댐 방면으로 25km에(팔각정 전망대 바로 지나) 위치하고 있다. 자가용으로 약 30분 거리이며 매시간 마다 청주-대청댐-신탄진간 시내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 문의 전화 : 043-277-6633~4
면내마을
노산리/달계리/매봉리/상삼리/선동리/시동리/시목리/양지리/우륵리/죽암리/죽전리/중삼리/중척리/하석리
소개
면적 43.48㎢, 인구 4,910명(2001)이다. 14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과 북동쪽으로 문의면(文義面), 북서쪽으로 부용면(芙蓉面), 남서쪽으로 금강(錦江)을 끼고 대전 유성구 구측동(九則洞)·대덕구 신탄진동(新灘津洞)과 접한다. 면의 대부분 지역이 노년기 지형으로 잔구성 산지가 크게 발달하여 경지가 협소하다. 동부 경계는 구봉산(370m)을 주봉으로 산맥이 달리고 북서쪽은 노고봉(老姑峰:305m)을 중심으로 산지를 형성하며, 평지는 북부지방에 곡저평야가 다소 발달되어 있다. 경지면적이 적어서 쌀·보리 생산은 빈약한 편이나 대전·청주 등 인근의 대도시를 시장으로 하여 포도 등의 과일류와 무·배추·파·시금치·당근 등 채소류의 생산이 활발하다. 면 중앙에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와 국도가 남북으로 달리고, 남동부의 금강 강변을 따라 청주∼대전 간 지방도가 가로지르며, 서부 면계에는 경부선 철도가 통한다.
문화유적
유계화 가옥(柳桂和 家屋) (중요민속자료 제138호 · 청원군 부용면 부강리)
유계화 가옥은 조선 고종(高宗) 3년(1866)에 지은 한옥이다. 전체적으로 ㅁ자 모양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안채를 사랑채보다 약간 높게 축조하였다. 홑처마 합각지붕의 기와집으로 중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유계화(柳桂和)씨가 살고 있다.
가볼만한 곳
상수허브랜드 (충북 청원군 부용면 외천리 480번지)
상수 허브랜드는 허브에 관한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맛볼 수 있는 국내 최대의 허브농장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2천5백 여종의 허브 가운데 5백여종이 이곳에서 저마다 개성있는 향과 맛, 모양새를 뽐내고 있다. 수백 종의 허브 향이 복합된 3천평 크기의 자동유리온실 속은 허브의 나라 그 자체이다. 온실 한켠에는 라벤더실, 로즈마리실, 타임실, 커리프랜트실 등 13개의 전문 향기실을 별도로 만들어 허브차를 마시며 허브 꽃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허브산책로는 일명 '스트레스 해소 길'로 불린다. 크고 작은 바위틈에까지 허브가 심어져있다.
면내마을
궁현리/다락리/당곡리/사곡리/사인리/산단리/석화리/연정리/월곡리/월탄리/저산리/탑연리/태성리/학천리/황탄리
소개
면적 30.01㎢, 인구 9,793명(2001)이다. 15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은 청주시와 남이면(南二面), 북쪽은 옥산면(玉山面), 서쪽은 강외면(江外面), 남쪽은 부용면(芙容面)과 충청남도 연기군에 접한다. 면의 북부 사인리(俟仁里)·석화리(石花里) 일대에는 미호평야(美湖平野)의 일부인 미평들이 넓게 전개되어 벼농사지대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외에 산간에서는 고추와 담배가 주로 생산되며 낙농가가 많이 늘고 있다. 교통은 면 북부를 충북선 철도가 동서로, 경부고속도로가 남북으로 달리고, 중앙을 청주~조치원 국도가 동서로 가로질러 편리하다.
문화유적
밀천군 박승원호성이등공신녹권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6호 · 문의문화재단지 박물관)
명종 19년(1564)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량을 거쳐 동부승지, 대사헌, 충청도 관찰사, 도승지를 역임하다가 선조(宣祖) 25년(1592)에 한성부 판윤이 되었다. 이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모시고 의주의 행재소에 호종하다가 병사하였다.
가볼만한 곳
상잠사문화박물관 (충북 청원군 강내면 학천리 175)
누에가 비단으로 생산하는 과정 즉 뽕에서부터 고치생산을 표본과 실물을 과정별로 전시하였으며, 누에 사육시기에는 뽕을 따고 누에를 직접 키워 현장실습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누에 기르기 견학 및 체험>
* 개최시기 : 5월중순, 9월초순 (년2회)
* 행사내용 : 뽕따기, 오디따기, 애누에기르기·큰누에기르기,누에고치따기 등 (체험 견학자가 원할 경우 가져가서 기를 수 있도록 무료로 10~20마리씩 나누어 줌 )
충청대학 박물관 (충북 청원군 강내면 월곡리 330번지)
박물관에서 대표적인 유물 및 유적발굴 소개 등을 하며 증평 이성산성, 제천 월광사지, 영동 영국사, 진천 보탑사, 충주 김생사지 학술조사 도내에서 서화류를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그중 김옥균, 박영효, 김홍집 등의 서화류전시, 앞으로 박물관은 도내의 문화유적에 대한 학술조사 및 발굴조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지역민들의 문화의식 함양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역점을 두고자 한다.
* 소장품 : 토도류(225점), 금속류(138점), 옥석류(3점), 목제류(117점), 서화류(589점), 지직류(18점), 기타(450점)
면내마을
공북리/궁평리/동평리/만수리/봉산리/상봉리/상정리/서평리/쌍청리/연제리/오송리/정중리/호계리
소개
면적 40.83㎢, 인구 1만 1257명(2001)이다. 13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으로 충청남도 연기군에 접하고, 동쪽으로 미호천(美湖川)을 경계로 옥산면(玉山面)·강내면(江內面)에 접한다. 면의 북부지역에는 잔구성(殘丘性) 산지가 다소 발달되어 있으나, 기타 지역은 낮은 평지로 충청북도 최대의 곡창지대인 미호평야의 중심부를 이룬다. 평야 남단부를 흐르는 미호천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천수천(天水川), 서쪽으로 오천(烏川)이 흘러 관개에 유리하다. 쌀·보리 중심의 주곡농업이 이루어지며, 배추·오이·참외·수박·파·당근 등의 생산량은 충청북도에서 가장 많으며 면의 남부 미호천 연안에는 충청북도 최대의 낙농 단지가 조성되어 젖소 사육을 비롯해 육우·사슴·닭 등을 사육하고 있다. 남부지역을 충북선 철도 및 청주∼조치원 간 국도가 동서로 가로질러 인접 대도시와의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
공북리(拱北里) 음나무 (천연기념물 제305호 · 청원군 강외면 공북리)
이 음나무는 키 8.5m, 가슴 높이의 둘레 4.5m에 이르는 노거수(老巨樹)로서 나무의 수령이 약 700년이나 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하게는 알 수 없다. 어린줄기에 크고 단단한 가시가 많아서 옛날부터 귀신을 쫓는 나무라는 속설(俗說)도 있으나 오래된 줄기에는 가시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연제리의 모과나무 (도지정기념물 제112호 · 청원군 강외면 연제리 산10-1)
이 모과나무는 수령 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고목으로 전국적으로 모과나무과 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과울이란 지명은 충북도지 전설 편에도 명시되어 있고 또한 조선전기 유학자인 박훈(朴薰)선생이 이 모과울로 낙향하신 일이 460여년전의 일이라 이로써 그 수령을 추측할 수 있다.
면내마을
가락리/국사리/금계리/남촌리/덕촌리/동림리/사정리/소로리/수락리/신촌리/오산리/장남리/장동리/호죽리/환희리
소개
면적 65.47㎢, 인구 1만 1180명(2001)이다. 15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은 오창면(梧倉面), 동쪽은 청주시, 남쪽은 강외면(江外面)·강내면(江內面), 서쪽은 연기군과 접한다. 지형은 잔구성(殘丘性) 산지가 많은 것이 특색이다. 서부지역에는 이림산(李林山)·망덕산(望德山)·동림산(東林山:457m) 등을 중심으로 산지가 있고, 동부지역은 국사봉(國師峰)을 중심으로 파랑상의 구릉지가 산재한다. 이 두 산지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중앙을 충청남도로부터 남류하는 천수천(天水川)이 심한 곡류를 하면서 미호천(美湖川)에 합류한다. 미호천 유역 평야지대에 시설 원예를 설치하여 방울토마토·오이·상추·호박 등의 특산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수도작이 발달하여 다수확을 거두고 있다. 오산2리와 덕촌 등지에서는 낙농업이 성하다. 또한 중앙부를 경부고속도로가 남북으로 지나고, 조치원~증평(曾坪) 및 청주~수신(修身) 간 지방도가 오산리에서 교차한다. 청원군 서방에 위치하여 동암은 금강 상류인 미호천이 관류하고 북서남으로 천수천이 관통하고 있는 지역으로서 동쪽으로는 오창과학단지가 조성 중에 있고 서쪽으로는 오송의료과학단지가 조성될 계획이다.
문화유적
정수충 영정 및 영정중모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9호 · 청원군 옥산면 덕촌리)
세종(世宗) 32년(1450) 식년문과(式年文科) 시험에 급제하여 성균사예(成均司藝)를 거쳐 행사용(行司勇)을 지낸 뒤 세조(世祖)의 왕위찬탈을 도와 좌익공신(左翼功臣) 3등이 되었고, 후에 첨지중추원사를 거쳐 대사성(大司成)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고 봉조하(奉朝賀)로 있다가 죽었다.
박훈 신도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1호 · 청원군 옥산면 신촌리 산 9-8번지)
연산군(戀山君) 10년(1504)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여러 벼슬을 거치다가 중종(中宗) 14년(1519)에 현량과(賢良科)에 급제하고 승정원(承政院) 동부승지(同副承旨) 등을 지냈는데 기묘사화(己卯士禍, 1519)때 화를 당하여 17년간 유배생활을 하다가 중종 31년(1536)에 풀리어 그의 외가가 있는 이곳에서 말년을 지냈다.
가볼만한 곳
동림산성(청원군 옥산면 장동리)
청원군 북서쪽의 가장 높은 산이며 옥산면과 그리고 충남연기군 동면, 천안시 수신면에 걸쳐 있는 해발457m의 동림산 정상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뻗은 능선과 거기서 북서쪽으로 분기한 지맥 및 그 사이의 2개의 계곡을 포위하여 쌓은 테뫼식 석축성으로 매우 험한 지세를 이루고 있으며, 둘레 819.5m의 비교적 큰 성 이다. 이 성에 대해 고문헌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1971년의 전국유적목록에 처음 소개되었다. 성내에서 우물터는 발견되지 않으며 남단의 망대 바로 북쪽 능선에서 지름 5m, 깊이14m의 역원추형으로 패여진 저수고가 발견되었고, 유물로는 백제계의 토기편과 통일신라기~고려중기의 토기편과 기와편이 발견된다.
면내마을
가곡리/가좌리/각리/괴정리/구룡리/기암리/농소리/도암리/두릉리/모정리/백현리/복현리/상평리/석우리/성산리/성재리/송대리/신평리/양지리/양청리/여천리/용두리/원리/유리/일신리/장대리/주성리/중신리/창리/탑리/학소리/화산리(華山里)/화산리(花山里)/후기리
소개
면적 80.20㎢, 인구 1만 1876명(2001)이다. 동쪽은 북이면(北二面)·내수읍, 남쪽은 옥산면(玉山面)과 청주시, 북쪽과 서쪽은 진천군문백면(文白面) 및 충청남도 천안시병천면(幷川面)·동면(東面)과 접한다. 34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불당산(佛堂山:246m)·취령산(鷲嶺山:228m)·국사봉(國仕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경계로 서쪽에는 산지가 발달해 있고 동쪽에는 오창평야가 펼쳐진다. 미호천(美湖川)의 지류인 용두천(龍頭川)이 흐르고 있어 하곡평야가 발달하였다. 동쪽에는 북쪽 진천에서 남류하는 미호천이 평야 중심을 흐르면서 관개용수를 공급하여 미곡을 많이 생산한다. 배추와 무 등 채소재배와 양잠이 활발하고, 콩·팥을 중심으로 한 두류와 참깨·들깨·낙화생 등의 특용작물과 사과·잎담배 생산으로 유명하다. 또한 한우와 오리를 많이 사육한다. 면의 중앙부에는 오창과학산업단지가 건설되고 있다. 교통은 중부고속도로가 통과하며, 청주∼진천 간 국도와 조치원∼증평(曾坪) 간의 지방도가 교차한다.
문화유적
충비 삼월의 비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4호 · 청원군 오창면 양지리 산 16번지)
오창면 양지리쪽에서 목령산을 오르는 산중턱에 김윤(金潤)의 묘소가 있고 묘역 좌측에 노비 삼월(三月)의 비(碑)가 있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이 비는 작지만 보존상태는 매우 좋은편이며 돌이끼가 끼어 고색이 창연하다. 비의 앞면은 ‘충비삼월지비(忠婢三月之碑)’라 쓰여있고 뒷면에는 삼월의 공적 내용이 새겨져 있다.
박훈 신도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1호 · 청원군 옥산면 신촌리 산 9-8번지)
연산군(戀山君) 10년(1504)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여러 벼슬을 거치다가 중종(中宗) 14년(1519)에 현량과(賢良科)에 급제하고 승정원(承政院) 동부승지(同副承旨) 등을 지냈는데 기묘사화(己卯士禍, 1519)때 화를 당하여 17년간 유배생활을 하다가 중종 31년(1536)에 풀리어 그의 외가가 있는 이곳에서 말년을 지냈다.
가볼만한 곳
송천서원(청원군 오창면 양지리)
송천서원은 조선 숙종 21년(1695)에 청원군 옥산면 환희리 송천마을에 배향하고 후진을 교육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지금의 서원은 1978년에 중건하고 1984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5간, 측면 2간 맞배지붕, 겹처마 목조기와집인데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분합문을 달고 앞퇴를 두었으며 ‘숭모사’(崇慕祠)라는 현판을 걸었고, 마당 앞에 솟을 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면내마을
광암리/금대리/금암리/내둔리/내추리/대길리/대율리/부연리/서당리/석성리/석화리/선암리/송정리/신기리/신대리/영하리/옥수리/용계리/장양리/장재리/추학리/토성리/현암리/호명리/화상리/화하리
소개
면적 47.48㎢, 인구 7,322명(2001)이다. 북쪽으로 진천군초평면(草坪面), 동쪽으로 괴산군증평읍, 남쪽으로 북일면(北一面), 서쪽으로 오창면(梧倉面)과 접한다. 경지면적 2,726ha 가운데 논이 1,561ha, 밭이 1,165ha로 논밭의 면적이 비슷하며, 주곡 생산물은 미곡, 두류 등이다. 1970년대초부터 과수재배(복숭아·사과·배·포도)가 성해졌고 중반 이후에는 소·염소·돼지·닭 등을 사육하는 축산업이 성하였다. 원예작물(오이·호박·토마토·상추)과 콩·땅콩·고추·파·마늘·참깨·들깨·담배 등의 생산이 많다. 면 중앙을 남북으로 충북선 철도와 청주~충주 간 국도가 나란히 통과하고, 보은읍으로 지방도가 통하여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금연리(金淵里)와 토성리(土城里) 일대의 낭비성(娘臂城)은 삼국·고려·조선 시대에 걸치는 역사적 기록이 있는 성으로 부근에서 유물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문화유적
최명길 신도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9호 · 청원군 북이면 대율리 산15-2번지)
최명길은 인조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이고 영흥부사 기남의 아들이다. 선조38년 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을 거쳐 예문관 전적이 되었고 광해군이 모후를 유폐하고 정치가 날로 어려워 질 때 김 유, 이 귀 등과 뜻을 합해 인조를 영립했으며 그 공으로 참의에다 1등 공신이 되고 완성군에 봉해졌다.
최명길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 제68호·청원군 내수읍 대율리 산253-3번지)
최명길(1586-1647)은 조선인조 때의 명신으로 호는 지천, 시호는 문충이다. 정묘호란 때 주화론을 주창하여 국란을 타개하였던 인물이다. 영의정을 역임하고 완성부원군에 책봉되었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다.
손병희 선생 유허지 (충청북도 기념물 제30호·청원군 북이면 금암리 385-2번지)
1897년에 동학의 3세(三世) 교주(敎主)가 되고, 1904년 진보회(進步會)를 조직하였다. 1907년에 귀국하여 천도교라 갱칭하고 교세확장에 힘쓰다가 경술국치 이후 보성전문학교와 보성중학교를 천도교 명의로 인수하여 인재양성에 힘썼으며, 1919년에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의 필두(筆頭)로 조선독립을 선언하였다.
가볼만한 곳
낭비성(청원군 북이면 부연리)
북이면 부연리 동북쪽에 있는 해발 250m의 산정부와 남쪽의 계곡을 감싸고 설축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각종지리지에 낭비성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백제 때 청주를 일명 낭비성(娘臂城)이라 기록하였으며, 그 후의 여러 읍지(邑誌)에 같은 내용이 보이고 있어 이 산성을 ‘삼국사기’에 보이는 낭비성(娘臂城)과 동일한 산성으로 보려는 견해가 있다. 성의 둘레는 약 743m로서 축성은 자연적인 지형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산세가 험한 곳은 그대로 성벽을 쌓아 올리고 비교적 험하지 않은 곳은 성 안쪽의 경사면을 깎아내어 성토(盛土)한 후 폭 5.3m, 깊이 3.6m의 구덩이를 파고 잡석 또는 판석으로 기초를 다진 후에 석축하였다.
노고성(청원군 북이면 영하리)
낭비성 남서쪽 맞은편인 영하리 뒷산에 있는 테뫼형 석축성으로 속칭 할미성이라 불리 운다. 이 성에 대해서는 고문헌에 나타나지 않다가 일제시대의 고적조사 자료에 처음 소개되었다. 성의 둘레는 574m로서 동서길이는 220m, 남북 폭은172m이다. 남쪽 수구에 남문, 낭비성으로 토하는 북쪽에 북문이 있다. 성내에 우물터나 수원(水源)이 없고 표고가 낮고 경사가 완만하여 지세가 험하지 많으며, 낭비성과 매우가까이 자리 잡고 있는 점이나 방향 및 성문의 배치, 창고성이라는 별칭 등으로 미루어 이 성이 낭비성에 부속된 보루(塗尋) 또는 창고성(倉庫城)으로서의 기능을 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