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마을
계산리/구교리/금리/당곡리/동정리/매천리/봉현리/부용리/비탄리/산익리/설계리/심원리/양가리/영산리/예전리/오정리/주곡리/중앙리/화신리/회동리
소개
면적 100.20㎢, 인구 2만 2550명(2001)이다. 16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1940년 10월 1일 영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남쪽은 상촌면·양강면, 북동쪽은 황간면, 북서쪽은 용산면·심천면(深川面)과 접해 있다. 읍역의 대부분이 해발고도 200∼600m의 산지이며 평탄지는 드물다. 상촌면과의 경계지점에 삼봉산(三峰山:930m)이 솟아 있고, 그곳에서 읍의 중앙을 향하여 점차 고도가 낮아지며 북부에는 저산성 구릉지가 전개된다. 큰 하천은 없고 금강(錦江)의 지류들이 남동부에서 북서류하여 금강에 합류하며, 그들 소하천 유역에 좁은 곡저평야가 분포하여 쌀이 산출된다. 주요농산물은 쌀 외에 보리·밀 등이 산간지역에서 재배되며, 특산물인 감 외에 사과·배 등의 과일 및 잎담배 재배가 성하다. 예로부터 인근 및 무주(茂州) 지역에서 산출되는 임산물 집산지를 이루어 제재업이 발달하였다. 경부선 철도와 국도가 읍의 중앙을 동서로 병행하여 달리고, 지방도는 북으로 보은(報恩), 남으로 무주(茂朱)에 통하여 중·남부 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가 되고 있다.
문화유적
영동 송재휘 가옥(중요민속자료 제140호 .영동군 영동읍 금동 417)
이 집은 안살림과 바깥살림으로 구분된다. 안살림은 ㄱ자 형의 안채와, ㄴ자 형의 광채가 널찍이 둘러앉아 전체적으로 볼 때 ㅁ자 모양을 이룬다. 바깥살림에 해당하는 외부 공간은 변형이 많이 되어 전체적인 원형을 알기가 힘들다.
매천리 미선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364호 .영동군 영동읍 매천리 산 4-4)
s미선나무는 아벨리오필룸(abeliophyllum) 속 물푸레나무과로 1속 1종이다. 우리나라 특산식물일 뿐 아니라, 열매모양이 특징적이고 꽃도 아름답다. 세계적 희귀식물인 미선나무는 세계에서 오직 유일하게 충북의 영동 괴산 진천에서만 자생한다.
영동향교(지방유형문화재 제99호 . 영동군 영동읍 부용리 392)
향교는 조선시대에 지방의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영동향교는 조선 선조때(1567∼1608)에 처음 지었다. 그 후 현종 원년(1660)에 옛 읍성 안으로 옮겼으며, 숙종 2년(1676)에 구교동으로 옮기고, 영조 30년(1754)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심원리 부도(지방유형문화재 제122호 .영동읍 부용리(향토민속자료 전시관))
이 부도는 연꽃 봉우리 모양의 부도이다. 넓이 120cm, 높이 60cm, 지름 23cm의 동그란 대석에 연꽃을 조각하였고, 그 위에 부도를 안치한 특이한 모양의 부도이다. 부도는 직경 60cm, 총 높이는 100cm로, 섬세한 조각이 돋보인다.
영동 설계리 농요(지방무형문화재 제6호 .영동읍 설계리 772)
설계리 농요는 모찌기 노래. 아시매기(초벌매기), 두벌매기로 구성되었으며 5음 음단 계면조 노동요의 일종으로서 설계리 농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생활 속의 기쁘고 슬프고 즐거움 애절함을 소탈하게 호소한 내용이 담겨진 노동요로서 지금껏 주민들에 의해 손상됨이 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부용리 고분(지방기념물 제34호 .영동읍 부용리 (을곡)전 73)
이 무덤은 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방형의 석실분으로 봉분이 무너지고 도굴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내부의 네 벽은 12∼14단으로 다듬은 돌로 쌓았으며, 남북의 길이가 355㎝, 폭이 210㎝, 높이가 145㎝이다. 남쪽에 연도 시설이 있으며, 2매의 거대한 덮개돌로 덮고 있다. 봉분은 없어졌으나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영동 중화사대웅전)(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33호 .영동읍 화신리)
중화사 대웅전은 신라 진평왕(582년)때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창건하고, 고려 공민왕(1352년)때 보각국존(普覺國尊)이 중창하였다고 전해지고, 임진왜란 때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다시 중창하였고 현재의 건물은 순종(1908년)때 백의선사(白衣禪師)가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면내마을
용산리/청화리/한곡리/금곡리/가곡리/시금리/부릉리/산저리/구촌리/율리/신항리/한석리/부상리/천작리/법화리/미전리/매금리/상용리/백자전리
소개
면적 66.90㎢, 인구 4,597명(2001)이다. 19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은 영동읍, 동쪽은 황간면·경상북도 상주시모서면, 북쪽은 옥천군, 서쪽은 심천면과 접한다. 북부의 천관산(天冠山:368m), 남부의 박달산(朴達山:475m) 등 해발고도 200∼400m의 구릉지로 평지가 적다. 송천(松川)이 면의 남부를 곡류하여 금강(錦江)에 유입되며 송천의 지류가 천관산에서 발원하여 남류한다. 이 하천 유역의 곡저평야에서 주로 쌀이 생산되며, 보리·밀·잎담배가 면 전역에서 재배되며, 그밖에 사과 재배가 행해진다. 영동에서 동쪽으로 약 13.5 km 떨어진 용산면 용산리와 가곡리 리계에 있는 용두산이 우뚝 서 있다. 이 산의 이름이 용산으로 된 것은 마치 용처럼 생긴 그 산의 외용에서 연유되었다지만 용산면 이름도 실은 이 산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문화유적
영동 신항리 삼존불입상(국가 보물 제984호 .용산면 신항리 135-1)
이 불상은 신항리 마을 입구에서 3m쯤 되는 언덕에 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4각형 반석 전면에 새긴 통일신라시대의 삼존석불 입상이다. 본 불상은 풍만한 얼굴을 하고 있고, 입과 입술은 윤곽이 뚜렷하며 콧날은 오뚝하다. 두 귀는 짧고 목이 긴 편이며, 삼도의 모습은 없다.
송담재(지방문화재자료 제25호 .영동군 용산면 율리 594)
이 재실(齋室)은 율재 정경(鄭瓊)이 돌아가신 후에 후손들이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저조 경술년(1790년)에 중건하였다 한다. 정경(1490∼1564)은 16세기 초엽의 인물로 호는 율재(栗齋),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신항리 상여(지방민속자료 제8호 . 용산면 신항리 24)
이 상여는 1909년 고종 황제가 6촌형인 이용직(초명은 이용강) 대감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하사했다고 전해져 오고 있는 왕가의 상여이다. 보통 상여와는 달리 대차·소차의 2중 구조로 되어 있다. 혼백을 모시는 요여(腰輿)는 4명이 들도록 되어있다.
김수온 묘소(지방기념물 제76호 . 용산면 한곡리 산 18-1)
이 무덤에는 김수온(1409∼1481) 선생이 안장되어 있다. 묘비와 장명등 및 문인석이 있다. 김수온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자는 문량(文良), 호는 괴애(乖崖) 또는 식우이며 본관은 영동이다.
민대혁 효자문(영동군 향토유적 제 55 호 . 용산면 부상리 산 37)
그는 그물을 만들어 어부에게 주어 5일에 생선 2마리를 바치게 하고, 푸줏간에 돈을 주어 10일에 고기 5근을 바치게 하여 부친을 봉양하였다. 그러던 중 부친의 발에 종기가 나자 백약이 무효였으나 쇠비름이 좋다는 말을 듣고 겨울인데도 울타리 밑에서 쇠비름을 개어 생즙을 내서 발라 종기를 낫게 하였다.
면내마을
우천리/회포리/금계리/원촌리/소계리/마산리/남성리/신흥리/난곡리/우매리/용암리/노근리/관평리
소개
면적 90.20㎢, 인구 5,964명(2001)이다. 14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남동쪽은 매곡면, 동쪽은 추풍령면, 북쪽은 경북 상주시 모서면·모동면, 북서쪽은 용산면, 남서쪽은 영동읍에 접한다. 면의 북부는 포성봉(933m)·주행봉(舟行峰:870m) 등이 연속된 백화산지이고, 남부는 해발고도 200∼400m의 구릉지가 넓게 차지하여 평지는 적다. 송천(松川)이 백화산지에서 남류하는 석천(石川)을 합류하여 면의 중앙을 동서로 관류한다. 농경지는 송천·석천 연변과 남부의 구릉지 사이에 분포하나 그 면적이 협소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및 과일·채소류 등인데 산출량이 많지 않다. 임산물이 많고, 원촌리에는 금·은 광산인 월유광산(月有鑛山)이 있다. 경부선·경부고속도로·경부국도가 면의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하고, 황간역·황간 인터체인지가 있는 교통의 요지이다.
문화유적
반야사 삼층석탑(보물 제1371호 . 황간면 우매리 151-3)
이 탑은 신라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석천 계곡 위로 1km 떨어진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라 한다. 지대석 위에 1층의 기단을 이루고 그 위에 탑몸돌을 올리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이 올려져 있는 전형적인 양식을 보이고 있다.
가학루(지방유형문화재 제22호 . 황간면 남성리 140)
1919∼1921년 사이에 지어진 이 집은 전통적 건축기법에서 벗어나서, 건물의 칸이나 높이 등을 크게 하는 경향으로 변화를 보이던 시기의 대표적 건물이다. 집은 안채와 사랑채 및 사당의 3공간으로 구획하여 안담으로 둘러싸고, 그 밖을 바깥담으로 크게 둘러쌌다.
황간향교(지방유형문화재 제100호 . 황간면 남성리 150-1)
누정은 자연을 관상하며 세상일을 논하던 집회장소이며, 손님을 맞기도 하고, 전시에는 지휘본부가 되기도 하였다. 경상도 관찰사 남재(南在)가 ‘마치 학이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듯 하다’ 하여 편액하여 ‘가학루’라 하였으며, 이첨이 기문을 썼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성종 21년(1490)에 현감 손번이 다시 세웠다.
영동 송우암 유허비(지방기념물 제46호 . 황간면 원촌리 111)
이 비석은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이 이곳에 잠시 은거하며 학문을 가르치던 곳을 알리기 위해 정조 3년(1779)에 세운 것이다. 선생은 한천팔경의 하나인 이곳에 초당을 짓고 한 때 강학하였다. 그 후 이곳에는 한천서원을 세워 우암을 향사하였으나, 고종 초에 철폐되었고, 1910년에 한천정사를 세웠다.
한천정사(문화재자료 제28호 . 황간면 원촌리)
이 곳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이 한천팔경(寒泉八景)이라 일컫는 아름다운 절경을 음미하면서 서재(書齋)를 짓고 글을 가르치던 곳으로 한천팔경은 사군봉(使君峰), 월류봉(月留峰), 산양벽(山羊壁), 용연대(龍淵臺), 화헌악(花軒嶽), 청학굴(淸鶴窟), 법존암(法存庵), 냉천정(冷泉亭)으로 이름 붙여진 그 모양이 기이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안정 박사삼 묘표(문화재자료 제34호 . 황간면 서송원리)
그는 효행이 출천(出天)하여 효종 7년(1656년)에 장사랑사옹원참봉에 증직되었으며, 그의 사후에 세운 묘표는 현종 10년(1669년)에 박사삼의 아들 일석(一石) 박유동(朴惟東)의 청으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이 저술했고, 비문 글씨는 그의 손자 헌장이 써서 입석했다.
가볼만한 곳
백화산 (포성봉, 주행봉)(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해발 933m의 백화산(포성봉)은 충북 영동과 경북 상주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바위가 많고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는 산이다. 이곳에선 백화산이라고 불리고 있으나 지도상에는 포성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경북쪽 산행들 머리에는 조선 숙종때의 옥동서원과 백옥정, 보현사등이 있으며, 충북쪽 반야사 입구에서 오르는 코스는 신라 성덕왕때 창건된 고찰 반야사가 등산객을 반긴다. 산 위치는 영동군과 경북 상주시의 경계에 있으며 수원이 풍부하고 기암절벽이 많은 산으로 반야사쪽 산중턱에는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협곡이 숨어 있어 모험가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찾아가는 길은 황간IC →반야사 →백화산 (포성봉) 이다.
한천팔경 (월유봉,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
황간에서 서북방으로 2㎞ 지점에 우뚝 솟아있는 월유봉밑 일대의 절묘한 산수를 가리켜 한천팔경이라 한다. 월유봉은 절벽이 공중에 우뚝 솟아 높고 수려하며, 그 봉우리에 달이 걸려있는 정취는 진실로 아름답다. 또한 깎아 세운 듯 똑바로 서있는 월유봉 밑을 맑은 물이 휘어감아 돌고 있어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듯하다. 달님도 쉬어 간다는 층암절벽의 월유봉은 그 아래로 맑은 물이 휘감고 있어 우암 송시열 선생도 한천정사를 지어 이곳에서 강학을 하였던 곳으로 유명하며, 한천팔경은 동국여지승람에서부터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심묘사(반야사 보다 먼저 창건된 사찰로 현재는 없음)의 사내팔경으로 기록되어 있다.
면내마을
지봉리/신안리/추풍령리/관리/계룡리/사부리/죽전리/작점리/웅북리
소개
면적 55.20㎢, 인구 3,178명(2001)이다. 9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은 매곡면, 경북 김천시 봉산면, 동쪽은 경북 김천시 어모면, 북쪽은 경북 상주시 모동면과 공성면, 서쪽은 황간면에 접한다. 1991년 7월 1일 황금면(黃金面)에서 개칭되었다. 북부의 지장산(芝庄山:772m)·학무산(鶴舞山: 678m), 남부의 눌의산(訥誼山:743m) 등 험준한 산지가 면의 거의 전역을 차지하고, 추풍령(秋風嶺:221m)이 동서로 가로놓여 있다. 경부선 연변의 좁은 농경지를 따라 취락이 분포되어 있으며, 주산업은 농업이지만 농작물 산출량은 많지 않다. 주요 농작물은 쌀·보리·콩류 및 고추·잎담배 등이고, 양잠도 활발하다. 경부선 구간 중 가장 고도가 높은 추풍령을 넘는 철도·고속도로·국도가 면을 동서로 횡단하고 있어 교통의 요지를 이룬다.
문화유적
장지현장군 순절비 및 전적지(지방기념물 제96호 . 추풍령면 사부리 518)
이곳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장지현(1536∼1593) 장군의 전적지로서, 순절비와 사당이 있다. 장지현은 자는 명숙(明叔), 호는 삼괴(三槐)이며, 본관은 구례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1592) 경상도 관찰사 윤선각의 비장이 되어 이듬해 추풍령에서 왜적을 맞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신안리 석불입상(영동군 향토유적 제 20 호 . 추풍령면 신안리 반현마을)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불입상(石佛立像)은 반고개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매년 음력 1월 14일에 마을 수호와 가정의 덕복(德福)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고 있다. 불상의 전체높이는 2.27m, 어깨폭은 80㎝ 이다.
지봉리 좌불상(영동군 향토유적 제 29 호 . 추풍령면 지봉리 10-1)
건립 연대는 미상이고, 임진왜란 때 불상의 두부(頭部)가 절단되었다고 전하며 2기(基)로서 뒤쪽에는 입불상(立佛像)이 있고, 앞쪽에는 좌불상(坐佛像)이 있다. 좌대에는 연화문(蓮花文)이 조각되어 있고, 우측 팔이 절단 되었으며, 두부의 상단면도 파손되었다.
면내마을
장척리/노천리/강진리/옥전리/유전리/수원리/어촌리/공수리
소개
면적 45.61㎢, 인구 2,529명(2001)이 거주하는 매곡면은 8개 리로 구성됐다. 면의 동쪽은 경상북도 김천시, 남쪽은 상촌면, 북동쪽은 추풍령면, 북서쪽은 황간면에 접해 있다. 남부의 황학산(黃鶴山:1,111m), 동부의 가성산(720m), 북부의 봉대산(烽臺山:654m) 등 백두대간에 속하는 비교적 높은 산지가 많고 평지는 협소하다. 금강의 지류인 송천(松川)이 면의 서부를 북류하며, 그 연안에 면내에서 가장 넓은 평지가 분포하여 쌀 생산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농산물은 쌀·보리·밀 등 주곡작물 외에 포도·감·복숭아의 산출이 많고, 그 밖에 잎담배 재배와 양잠도 하고 있다. 경부선 철도 및 경부고속도로와 국도가 면의 최북단을 횡단한다. 면의 남부에 있는 황학산은 명승지로 등산객이 많이 모여든다.
문화유적
사로당(지방유형문화재 제151호 ? 영동군 매곡면 노천리(내동) 322)
이 곳은 충주 박씨 박수근(朴守謹)의 4형제가 나이 80이 되도록 학문을 익히던 서당이다. 따라서 사로당이라 하였다. 비해당(匪懈堂)이라 이름 하기도 하였다. 보기 드문 높은 마루를 하고 사면에는 간결한 난간을 돌리고 있는 특징이 보이고 있다.
흥학당(지방유형문화재 제152호 . 영동군 매곡면 노천리(내동) 452-1)
이 곳은 충주 박씨 종중에서 후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서당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선영 아래에 지었기 때문에 자손들의 작업장으로, 묘소에 향사할 때 재실의 역할로도 사용되었다. ‘흥학당기(興學堂記)’와 중수기(重修記) 등이 전하고 있다.
무첨재(지방유형문화재 제172호 . 영동군 매곡면 옥전리 558-1)
이 곳은 중종 14년(1519)에 기묘사화(己卯士禍)를 피하여 고향에 돌아온 안요(安燿:1481∼1546) 선생이 지어서 학문을 가르치던 곳으로 ‘네가 난 바에 욕됨이 없게 하라’는 뜻으로 무첨이라 하였다.
세천재(문화재 자료 제 29호 . 영동군 매곡면 유전리 536)
이 재실(齋室)은 조선 숙종(肅宗) 16년(1691)에 충주박씨 문중에서 조상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동시에 후손들이 학문을 배우고 탐구하는 곳으로 사용 할 수 있도록 지어진 것이다.
황의사(영동군 향토유적 제 61호 .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 산 284)
학촌 박이룡 장군(1533∼1595)은 충주인으로, 해서 순찰사로 있을 때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와 스스로 황의장이 되어 1500여명의 의병을 모아 이곳 괘방령을 근거지로 삼아 김천, 지례, 개령, 선산 등지에서 200여 회에 걸쳐 수많은 왜적을 무찔러 큰 공을 세웠다.
면내마을
상도대리/흥덕리/둔전리/고자리/돈대리/유곡리/임산리/궁촌리/하도대리/물한리/대해리
소개
면적 137.60㎢, 인구 2,980명(2001)이 거주하는 상촌면은 11개 리로 이루어졌다. 남동쪽은 경상북도 김천시, 남서쪽은 전라북도 무주군, 북동쪽은 매곡면, 북서쪽은 영동읍과 접한다. 면의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험준한 산악지역을 형성하고 있고 남쪽에 민주지산(岷周之山)·각호산(角虎山)·막기항산·황학산(黃鶴山) 등 높은 산이 중첩되어 있어 평지가 거의 없다. 다만 북쪽으로 흐르는 초강천 상류의 산간지역에 좁은 경지가 분포한다. 주요 농산물은 감·잎담배·양잠 등이며, 그 밖에 임산물이 풍부하고 광산물도 산출된다. 관광지로 물한리의 물한계곡이 있다. 산지가 연속되어 교통이 불편하며 북부의 황간으로 연결된 도로가 있다.
문화유적
영동 화수루(지방유형문화재 제165호 . 영동군 상촌면 하도대리 81)
이 곳은 고성 남씨 수일파 문중에서 후손들의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명종 원년(1546)에 옥계서당 이라 하여 처음 세웠다. 그 후 순조 4년(1804)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우고 화수루라 이름을 바꾸어 후손들의 강학 장소로 사용되어 왔다.
영모재(지방유형문화재 제176호 . 영동군 상촌면 임산리 376)
이 곳은 고성 남씨의 재실(齋室)이다. 순조 28년(1828) 3월에 남주한(南周漢)이 선대의 묘소 아래에 처음 지었다. 특징은 굴뚝이 없는데도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연기가 나오지 않고 불꽃이 내부로 빨려 들어가 열효율을 극대화한 구조를 하고 있는 점이다. 상량문과 중수기가 있다.
영동 삼괴당(지방기념물 제22호 . 영동군 상촌면 임산리 446)
이 곳은 고성 남씨 남지언(南知言:1507∼?)이 말년에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강당이다. 남지언은 자를 신지(愼之), 호를 삼괴당이라 했으며, 본관은 고성이며, 남인(南寅)의 아들로 이곳에서 태어났다. 효행으로 천거되어 김천찰방에 임명되어 잠시 나갔다가 사임하고 돌아와 강당을 짓고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세심정(영동군 향토유적 제 19 호 . 영동군 상촌면 임산리 43-1)
세심정은 조선 중종 초에 삼괴당 남지언 선생이 기묘사화에 시국을 비관하고 일생을 은거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켜 만족할 줄 아는 선비 생활을 하면서 세운 정자이다. 학문과 덕을 숭상하고 도리를 배우는데 일생을 바치며 벼슬을 버리고 숨어사는 선비들의 뛰어난 행실과 높은 절개를 본받아 이어가라는 의미에서 세심정이라 하였다.
가볼만한 곳
물한계곡 (민주지산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해발 1,242m의 민주지산은 한반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에서 분기하여 남서로 뻗어내린 소백산맥이 추풍령에서 내려 섰다가 다시 기개를 일으키면서 형성된 민주지산은 충북영동, 경북김천, 전북 무주의 3도에 걸쳐 있는 삼도봉과 북으로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산으로 해발 1,100m~1,200m의 고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쌓여 20여km의 깊은 골을 만들었는데 이 곳이 바로 물한계곡이다.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물이 차다는 한천 마을의 상류에서부터 시작된다. 찾아가는 길은 자가 운전시 - 황간 →21번군도 →매곡면 →상촌면 →물한계곡 주차장이다.
황룡사(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1972년 10월 1일 창건한 황룡사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요사 2동과 산신각이 있고, 경내에는 대웅전 앞에 석등 2개, 7층석탑 2개, 연화대 석조입불살 등이 있다. 또 대웅전 뒤 동편 뜰에는 둘레 5미터 높이 2미터나 되는 큰 바위가 2개 있고, 요사 앞에도 큰 바위가 있어 장군바위라 불리어 왔고, 이 바위로 인해 이 계곡을 뛰엄박골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옛부터 한 장군이 이 바위에서 앞바위로 뛰면서 무술을 연마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삼도봉대화합탑(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삼도봉 화합의 탑은 충북 영동군과 경북 김천시, 전북 무주군이 지역 감정을 떨어버리고 인근 주민간의 화합 분위기 조성을 위해 만들었다. 건립장소는 삼도의 경계를 이루는 삼도봉 정상(1,176미터)에, 높이 2.6미터, 모형은 기단부가 대리석 거북조각, 탑신부는 대리석으로 용 조각, 상륜부는 오석 원구를 얻고, 도안은 동양화가 매봉 안병찬화백이, 제작은 서울 동강석재산업, 운반은 육군 제 5019부대에서 헬기를 지원하여 완성하였다. 탑 상륜의 원구는 둥근 해와 달을 표시하며, 영원한 화합을 상징하고, 탑신부 용조각의 청룡은 웅지, 기상, 등용(登龍), 길상(吉祥)으로 영원한 발전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청룡 3마리는 삼도를 뜻하고, 3마리의 용이 해와 달을 떠받쳐 빛을 발하게 함으로써 지역간의 화합을 상징하게 하였다.
‘집으로..’촬영장소(영동군 상촌면 궁촌리)
촬영장 가는 길은 촬영장(지통마을)은 황학산 7부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이 일대는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산자수명한 곳이다. 궁촌교에서 왼쪽으로 오르다보면 300m지점에 궁촌정수장(상촌,추풍령,매곡,황간의 식수원)이 있고, 1.2㎞지점에 궁촌 저수지를 볼 수 있으며 맑은 저수지물을 끼고 돌면 궁촌교에서 1.8㎞지점에 새막골과 촬영장(지통마) 쪽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촬영장 가는 길은 오른쪽 길로 가야 되며 지프종류의 차는 올라갈 수 있지만 일반 승용차는 오르기 힘든 길이다. 갈림길에서 차를 놓고 걸어서 오르는 길은 맑은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을 수 있어 도시에서의 삭막한 기분을 벗어 던질 수 있는 운치가 있는 길이다. 현장 안내는 마을리장 김재문 043-743-3858
면내마을
쌍암리/구강리/두평리/산막리/괴목리/가동리/묘동리/교동리/양정리/죽촌리/지촌리/유점리/만계리/묵정리/남전리
소개
면적 82.00㎢, 인구 4,4424명(2001)이 거주하는 양강면은 14개 리로 이루어졌다. 남쪽은 용화면·학산면, 북동쪽은 영동읍, 북쪽은 심천면, 서쪽은 양산면과 접한다. 남부의 천마령(天摩嶺:933m)을 중심으로 북부로 향하여 고도가 낮은 구릉지가 분포하며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형을 이룬다. 서쪽 경계를 따라 금강(錦江)이 곡류하면서 북으로 흐른다. 경지는 북부의 낮은 구릉지와 금강의 동사면(東斜面) 및 천마령에서 발원하는 금강의 지류유역 산간지역에 분포하며, 주요 농작물로 쌀·보리 등의 주곡작물과 잎담배·사과·복숭아·감 등을 산출한다. 무주~영동 간 국도가 면의 중앙을 관통한다.
문화유적
영동 김선조가옥(중요민속자료 제142호 영동군 양강면 괴목리 401-2)
이 집은 17세기 말에 건축되었다고 전해지는데, 1안채와 별당 형식의 안 사랑채만이 남아 있고, 안채 앞에 있었다는 사랑채는 현재 건물의 기단(基壇)만 남아 있다. 다만 안채에 비하여 외부공간이 전체적인 균형을 잃은 것이 흠이지만, 주변의 자연 경관과 건물을 잘 조화시킨 기법은 일품이다.
영동 김선조가옥(중요민속자료 제142호 영동군 양강면 괴목리 401-2)
이 곳은 조선 초기 정종∼태종 연간(1398∼1418)에 이 지역의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지은 서당. 처음에는 풍곡당(豊谷堂)이라 하였다가, 광해군 6년(1614)에 정구(鄭逑)가 이곳에 ‘자법정풍(資法正風)’으로 강학을 장려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자풍서당’으로 바꾸었다. 이곳에서 책 읽는 소리는 양산팔경의 하나라고 한다.
묵정리 고가(지방유형문화재 제146호 영동군 양강면 묵정리(외마포))
이 집은 본래 용화면 월전리에 있었던 집으로, 1932년에 매수하여 지금의 자리에 옮겨 세운 것이라고 한다. 안채는 영사재(永斯齋)라 이름하고 있다. ‘임신 2월 23일 상량(壬申二月二十三日上樑)’ 이라는 글이 있는 팔작지붕집이다. 오래된 건물은 아니나, 부분적으로 건축 양식상 특징 있는 세부 부재를 갖추고 있다.
김영이와 장비단소(지방기념물 제89호 영동군 양강면 남전리 산637)
예로부터 전란으로 인하여 명장, 명현의 시신을 찾지 못하거나, 묘를 잃어버린 경우에 단을 만들어 묘소를 대신하는 것을 단소라고 한다. 이 단소는 전객시령 김영이와 한성 판윤 장비의 후손들이 단소를 세워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후에 김영이와 둘째 사위 한성 판윤 장비의 묘소가 없어지자 이곳에 단을 마련한 것이다.
면내마을
자계리/용화리/조동리/안정리/월전리/용강리/여의리
소개
면적 59.30㎢, 인구 1,125명(2001)이다. 7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남부는 무주군, 동부는 상촌면, 북부는 양강면·학산면과 접한다. 민주지산(珉周之山:1,242m)이 남동쪽 상촌면·무주군 접경지대에 있고 북동부의 천마령(天摩嶺:926m) 등 산악이 험준하고 평야는 매우 좁다. 금강(錦江)의 지류인 남대천(南大川)이 무주군과의 접경지역을 따라 곡류하면서 서쪽으로 흐른다. 남대천과 지류유역의 산간지역에서 쌀·보리 등이 생산되며 산록의 경사지를 이용한 버섯·인삼의 재배가 성하다. 그밖에 잎담배 재배가 이루어지나, 그 산출량은 많지 않다. 교통은 불편하며 지방도로 영동읍·무주읍과 연결된다.
문화유적
창효각 (영동군 향토유적 제48호 . 용화면 자계리 419)
이 창효각은 김정만(金挺萬)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934년 종중에서 건립하였다. 김정만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조정에서 효자상을 받았으며, 조선 중기 사람으로 본(本)은 김해(金海)이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 둥근기둥의 맞배 기와집이다.
남원양씨 행적비각(영동군 향토유적 제56호 . 용화면 자계리 587)
양씨는 경주정씨 양경공파 후손인 정세환과 혼인하여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자식과 시부모를 모시던 중, 시아버지가 병환이 나자 손가락과 허벅지를 칼로 베어 피를 먹이는 등 효성이 지극하여 그 효열(孝烈)을 기리기 위하여 1930년 경주정씨 종중에서 건립하였다.
가볼만한 곳
민주지산자연휴양림(용화면 조동리 산4-129번지)
전국최초로 개발한 조동 산촌마을과 연계한 자연휴양림으로 충청, 전라, 경상도와 이웃하고 있다. 민주지산 휴양림은 소백산맥 줄기에 분포하는 각호산(1,176m), 민주지산(1,241.7m) 등 주변의 명산에 둘러싸여 사계절 산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 명산에 위치한 휴양림으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자연 그대로의 휴양림이다. 휴양림 관리도를 따라 조성된 산열매 향수 길은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하며, 울창한 숲 속의 다양한 식생은 수목에 대한 해설이 있어 가족 단위나 학생들에게 자연학습의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찾아가는 길은 자가용 이용 시에 영동ic →영동읍 묵정삼거리 →용화삼거리 →휴양림 전 화 : 민주지산자연휴양림 (043)740-3437~8
조동산촌마을
살기 좋은 산촌마을 및 즐거운 휴식 공간 제공을 위하여 ’95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한 용화면 조동리 일원의 조동산 촌마을은 상하수도 및 주택계량 등으로 깨끗한 환경 속에 민주지산, 각호산, 천만산 자락속에 깊은 계곡과 맑은 물, 다양한 휴식 공간과 넉넉한 인심이 넘치고 산간오지에서 생산된 버섯, 산채, 약초, 호도, 포도등 자연산 신토불이 토종 특산물이 있는 곳이다. 마을 내에 있는 조동 자연 수련원은 1일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 회의실, 식당, 잔디광장, 어린이놀이터, 깨끗한 하천이 있어 직장인 및 학생, 단체모임의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민주지산, 각호산의 깊은 계곡에서 산림욕을 즐길 수 있도록 주차장, 야영장 등 휴양시설이 조성되어 있고, 봄, 가을의 단풍과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는 단순휴양이 아닌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전 화 : 043 - 745 - 6939
면내마을
봉소리/범화리/서산리/학산리/황산리/봉림리/지내리/아암리/박계리/도덕리
소개
면적 73.50㎢, 인구 4,135명(2001)이다. 10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남부는 용화면·무주군 무주읍, 동부는 양강면, 북부는 양산면, 서부는 충남 금산군 부리면과 접한다. 남부의 백하산(白霞山:634m)·칠봉산(七峰山: 521m), 서부의 성주산(聖柱山:624m) 등 산릉이 면의 주변을 에워싸 분지형태를 이룬다. 큰 하천은 없고 원당천(元塘川)이 북류하여 금강과 합류한다. 경지는 무주∼영동 간의 국도 변과 면의 중앙부 구릉성 저지에 분포하며 주산물인 쌀을 비롯하여 보리의 산출이 많다. 그 밖에 잎담배·양잠이 성한데, 특히 이곳은 군내의 대표적인 잎담배 산지를 이룬다. 무주∼영동 간 국도가 면을 관통하고 학산에서 양산(陽山)을 거쳐 옥천까지 지방도로 연결된다.
문화유적
창효각 (영동군 향토유적 제48호 . 용화면 자계리 419)
이 창효각은 김정만(金挺萬)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934년 종중에서 건립하였다. 김정만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조정에서 효자상을 받았으며, 조선 중기 사람으로 본(本)은 김해(金海)이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 둥근기둥의 맞배 기와집이다. .
남원양씨 행적비각(영동군 향토유적 제56호 . 용화면 자계리 587)
양씨는 경주정씨 양경공파 후손인 정세환과 혼인하여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자식과 시부모를 모시던 중, 시아버지가 병환이 나자 손가락과 허벅지를 칼로 베어 피를 먹이는 등 효성이 지극하여 그 효열(孝烈)을 기리기 위하여 1930년 경주정씨 종중에서 건립하였다.
면내마을
죽산리/가곡리/원당리/봉곡리/송호리/수두리/가선리/누교리/호탄리
소개
면적 57.10㎢, 인구 2,682명(2001)이 거주하는 양산면은 9개 리로 이루어졌다. 남쪽은 학산면(鶴山面), 동쪽은 양강면(楊江面), 북쪽은 심천면(深川面)과 옥천군 이원면(伊院面), 서쪽은 충청남도 금산군제원면(濟原面)과 접한다. 북부의 마니산(摩尼山:640m) 등을 제외하면 대체로 해발고도 200∼400m의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에서 남쪽으로 곡류하는 금강(錦江)이 남부에 와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남동부의 금강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발달하여 쌀·보리의 산지를 이룬다. 잎담배와 양잠이 성하며, 특히 인삼의 주산지인 금산(錦山)과 가까워 인삼 재배가 활발하다. 무주·금산·옥천 방면 지방도가 면내를 통과한다.
문화유적
영국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139-14)
이 나무는 높이가 31m, 가슴 높이의 둘레는 11m이며, 나이는 대략 1000년쯤으로 추정된다. 이 은행나무는 국가의 큰 난이 있을 때에는 소리를 내어 운다고 하며, 이 나무 바로 옆에는 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충분한 수분을 공급받고 있다.
영국사 부도(보물 제532호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산 138-1)
이 부도는 영국사에서 남쪽으로 200m쯤 되는 언덕 위에 있으며,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묻는 탑의 일종이다. 원각국사 유골이 영국사에 안치되었다는 기록이 비문에 남아 있어, 이 부도가 원각국사 사리를 안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 부도의 전체 높이는 1.76m이다.
영국사 3층 석탑(보물 제533호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산 138-1)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일반형 석탑으로서, 2중 기단 위에 3층으로 만든 몸돌을 세운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현재 있는 이 탑은 2중 기단 위층과 아래층 돌이 바뀌어져 있어, 옮겨 세울 때 잘못 복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통일신라 말기의 탑 중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국사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산 138-1)
이 비석은 고려 의종 7년(1154)에 선사(禪師)가 되었고, 명종 1년(1171) 9월 12일 왕사(王師)가 된 원각국사비 이다. 원각국사는 대선사 교웅의 밑에 들어가 아홉 살에 중이 되었다.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과 비머리에 있는 네 마리 용은 매우 특이하다.
영국사 망탑봉 3층석탑(보물 제535호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산 138-1)
이 탑은 영국사에서 동쪽으로 500m쯤 되는 곳에 일명 망탑봉이라는 작은 봉우리 정상에 위치한 화강암반 위에 세워졌는데 자연암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암석을 평평하게 다듬어서 기단을 만들었다. 고려 중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 탑의 전체 높이는 2.43m이다.
영국사 대웅전(지방유형문화재 제61호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산 138-1)
가곡리 고가(지방유형문화재 제147호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이희마을) 467)
영국사 석종형부도(지방유형문화재 제184호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산 138-1)
영국사 원구형부도(지방유형문화재 제185호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산 138-1)
덕수이씨 6세8효정문(지방기념물 제109호 영동군 양산면 원당리 424-8)
가곡리 고분(지방기념물 제97호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 141-7)
이의정 유적(지방문화재자료 제6호 영동군 양산면 봉곡리 380-1)
가볼만한 곳
송호국민관광지 (양산팔경, 영동군 양산면 송호리)
우리 국문학상 신라가요 목록에서 중요하게 헤아리는 양산가(陽山歌)의 고장 송호국민관광지는 양산을 꿰뚫고 남에서 동북으로 흐르는 금강 상류 연안에 위치한 명승지로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신라와 백제의 끊임없는 싸움의 역사 속에 신라 김흠운 장군의 애환과 양산가의 유래가 깃든 곳으로 유명하다. "사나이로서 몸을 나라에 바친 다음에야 남이 알건 모르건 마찬가지다. 어찌 구태여 이름을 구할 것이냐. -김흠운-" 금강 상류의 맑은 물과 100년 이상 된 송림이 어우러져 산림욕과 더불어 가족단위 및 청소년 심신수련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주변에는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는 강선대(降仙臺)와 승천하려던 용이 선녀가 목욕하는 것에 반하여 승천하지 못하고 떨어졌다는 용바위(龍岩), 만취당(晩翠堂) 박응종(朴應宗)이 말년에 후학을 가르쳤다는 녹음방초의 여의정(如意亭)이 있다.
*찾아가는 길: 자가 운전 시에 옥천 i.c →이원 →양산(송호리)
면내마을
각계리/약목리/기호리/마곡리/장동리/구탄리/심천리/서원송리/초강리/고당리/용당리/단전리/명천리/길현리/금정리
소개
면적 77.80㎢, 인구 4,463명(2001)이 거주하는 심천면은 14개 리로 구성됐다. 남부는 국사봉(國士峰:502m)·어류산(御留山:490m) 등 구릉성 산지가 전개되며, 북부는 해발고도 200∼300m의 저산성 구릉지가 많다. 금강(錦江)이 남부를 북류하여 중앙을 지나 송천(松川)과 합류한 뒤, 서쪽으로 곡류한다. 면의 중앙부 금강 유역과 송천 유역에 넓은 평야가 분포하여 쌀 생산이 많다. 쌀 외에 보리·잎담배·사과가 재배되며 특히 잎담배와 사과의 산출이 많다. 사과는 송천 유역의 충적지에서 많이 산출된다. 면의 중앙을 경부선과 국도가 통과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
영동 송재문 가옥(중요민속자료 제132호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420-2)
이 집은 기와에 새겨진 글에, 조선 고종 22년(1885)에 지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충청도와 경기지방 일부에서만 이와 같은 글을 새긴 기와를 가끔 사용한다는 것이다.
난계사(지방기념물 제8호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515)
이 건물은 우리 나라 3대 악성의 한 분인 박연(1378∼1458)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세종 7년(1425)에 악학별좌가 되어 당시의 불완전한 악기의 율조를 정리하여 악서를 편찬하였다.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더불어 3대 악성으로 추앙되고 있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김자수 유적(지방기념물 제41호 영동군 심천면 각계리 382)
이곳은 고려 말의 문신인 김자수 선생의 유적지이다. 유적으로는 선생과 그의 후손이 대대로 살았던 선지당(先志堂)과 후손의 효자 정려각이 있다. 김자수는 자를 순중(純中), 호는 상촌(桑村)이며, 본관은 경주로서 경주 김씨의 중시조이다.
난계 박연 묘소(지방기념물 제75호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산 49-1)
박흥생(1374∼1446)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하는 단종복위 운동에 가담하였으며, 사육신과 함께 동학사 초혼각에 배향되어 있다. 그의 학문과 충절과 효심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1683년 우암 송시열 선생이 비문을 짓고 약천 남구만 선생의 글씨로 묘비를 세웠다.
국당 박흥생 묘비(지방기념물 제88호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산 52-1)
이 탑은 영국사에서 동쪽으로 500m쯤 되는 곳에 일명 망탑봉이라는 작은 봉우리 정상에 위치한 화강암반 위에 세워졌는데 자연암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암석을 평평하게 다듬어서 기단을 만들었다. 고려 중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 탑의 전체 높이는 2.43m이다.
가볼만한 곳
옥계폭포(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난계사에서 2km정도 떨어진 옥계마을에서 산길을 따라 1km 쯤 가면 저수지가 나타나고 숲이 우거진 산을 약 300m 올라가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함께 높이 30m의 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옥계폭포인데 주위 경치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울창한 숲이 있어 한여름에도 서늘하다. 난계 박연을 비롯하여 많은 묵객들이 이 폭포를 찾았으며 , 요즘에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모습은 장관을 이루고 그 주변에 서 있으면 물보라로 인한 시원함을 만끽 할 수 있고, 폭포위로 올라가면 바위에 조그마한 소가 있는데 물이 맑고 깨끗하지만 깊이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찾아가는 길은 자가 운전 시 옥천i.c(4번국도 김천방향) →이원면 →심천면 고당리 →옥계폭포.
난계국악 박물관(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519-1)
난계 박연선생의 탄생지로서 그 분의 얼을 기려 이 지역 후예들이 우리지역을 국악의 본고장으로 가꾸어 모름지기 국악하면 난계를 떠올리고, 난계하면 영동이라는 등식으로 국악을 세계화하는데 영동이 앞장서고 영동을 국악의 메카로 가꾸어 세계의 음악인들이 한국의 전통음악을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성례지화 하기위하여 난계사를 중심으로 난계묘소를 가꾸고, 난계생가를 복원하며, 국악박물관을 건립하고 국악기 제작촌을 건립하는 등 난계로 인해서 파생된 국악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국악의 고장으로 만들고자 국악박물관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