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내마을
가화리/각신리/교동리/구일리/귀죽리/귀현리/귀화리/금구리/동안리/동정리/마암리/마항리/매화리/문정리/삼청리/상계리/상삼리/상야리/
서대리/서정리/소정리/수북리/신기리/양수리/오대리/옥각리/원각리/응천리/죽향리/중삼리/하계리/하삼리/화계리
소개
면적 47.54㎢, 인구 3만 963명이다. 법정리 21개 리와 행정리 54개 리, 52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949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북쪽과 서쪽에는 마성산(馬城山:410m)·용봉(486m)·장룡산(壯龍山)으로 연결되는 산지가 남쪽으로 뻗어 있고, 동쪽은 해발고도 100m 내외의 구릉지가 연결되어 독립된 작은 분지지형을 이룬다. 농산물로는 쌀·보리 이외에 옥수수·감자 등이 산출되며, 대전광역시에 인접해 있어 무·배추 등의 채소류와 사과·복숭아·포도 등의 과일류가 많이 생산된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포도와 복숭아가 유명하며, 포도 원액은 브라질·인도네시아·미국·홍콩 등지로 수출된다. 제조업은 중소기업 규모의 기계·지류 및 벽지 공업이 주를 이루며, 동안리에 22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는 옥천농공단지와 9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는 구일농공단지가 있다. 교통은 경부선을 비롯하여 경부고속도로와 국도가 나란히 동서로 가로지르면서 뻗어 있고, 옥천∼보은 간, 옥천∼금산(錦山) 간 지방도가 교차한다.
문화유적
용암사 쌍석탑(보물 제1388호 . 충북 옥천군 안내면 도이리 181)
이 두 석탑(石塔)은 같은 형태이며, 용암사(龍岩寺) 동편 탑봉(塔峯)의 자연 암반위에 나란히 서있다. 이층 기단(基檀) 위에 3층의 탑신부를 형성하고 상륜부(相輪部)를 장식한 일반형 석탑이다. 각층 탑신(塔身) 옥개석의 조성수법이나 오개 받침 등 각부의 양식이나 수법으로 보아 신라 말에서 고려 초 고려중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용암사 마애불(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7호 . 옥천읍 삼청리 산 51-1)
용암사는 552년 신라 진흥왕 13년에 의신조사가 이곳의 산세를 보고 신비함에 감탄한 나머지 본 사찰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마애불은 용암사 뒷편 장령산 바위벽에 양각한 여래입상으로 정교한 조각 솜씨는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하겠다.
옥천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 .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320)
옥천향교는 태조7년 (1398)에 창건 하였으며, 대성전은 세종22년(1440)에 건립하였고, 선조 때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되었던 것을 그 뒤에 재건하였다. 옥천향교의 건물배치는 성균관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게 명륜당이 맨 앞에 있고 다음으로 서쪽에 서재와, 동편에 고직사가 있고 내삼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대성전과 양옆에 동서무가 있다.
옥주사미소(충청북도 유형문화제 제 157호 . 충북 옥천군 옥천읍 상계리 57-2)
사마소는 조선시대에 지방고을마다 사마시(司馬試) 합격자들이 모여 유학을 가르치고 정치를 논하던 곳으로 전곡 출납 등의 금융업과 의창 역할도 했었다. 우암 송시열(右菴 宋時烈)이 쓴 의창중수기에 의하면 이 건물은 본래 어려운 백성을 위하여 곡식을 비축 저장해 두던 의창 건물을 뜯어서 효종 5년(1654)에 세운 것이라 기록되어 있다.
척화비(충북기념물 제6호 . 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양리 산4-4)
이 비는 1866년 고종 3년의 병인양요와 1871년 고종 8년의 신미양요를 치른 뒤 흥선대원군이 국민들에게 양인을 배척하고 경고하기 위하여 1871년 4월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요충지에세운 많은 척화비 중의 하나이다. 화강암에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즉,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라고 큰 글자로 음각되어 있다.
가볼만한 곳
정지용생가(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40-1번지)
옥천이 낳은 정지용선생은 한국 현대시사의 한 큰 봉우리로서 우리의 문학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광복 후 우리시단을 이룬 청록파 시인을 탄생시켜 현대문학을 빛내게 했다. 지용선생은 역사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기에 출생하여 옥천죽향국민학교를 졸업하신 후 어려운 환경 속에서 향학에 불타 상경하여 휘문고보에 입학하였고 그때부터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했다. 그리고 이 학교 졸업 후에는 일본유학을 하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으며, 귀국 후에 후진양성과 수많은 주옥같은 시들을 창작하여 한국 문학사를 빛냈다.
* 찾아가는 길 - 옥천읍(구읍)에 위치한 정지용생가는 전통 초가한옥으로 지어져 있으며, 근처에 육영수여사 생가터가 있으며, 옥천향교, 교동저수지 및 음식점(가든)이 많이 위치하고 있다.
면내마을
평산리/금암리/적하리/세산리/청마리/조령리/우산리/지양리/남곡리/석탄리
소개
면적 60.20㎢, 인구 4,028명(2001)이 거주하는 동이면은 10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금강을 경계로 북쪽으로 안남면, 동쪽으로 청성면, 남쪽으로 이원면, 서쪽으로 옥천읍과 접한다. 동부 지역은 해발고도 500m 내외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나, 서쪽 지역은 해발고도 100m 이내의 낮은 평지가 옥천까지 이어져 옥천분지의 일부를 이룬다. 또 북동쪽의 면계를 따라 흐르는 금강이 산악지대의 협곡을 휘돌아 경지는 빈약한 편이지만, 하안(河岸)의 계곡은 명승지로 꼽힌다. 서부 지역은 땅이 비옥하고 관개가 편리하여 쌀·보리 등 주곡농업이 발달하였으며, 인접한 옥천읍과 대전광역시의 근교적 입지를 이용해 포도 재배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면의 서부에는 보은과 충청남도 금산을 연결하는 국도가 남북으로 달리고, 남단부에는 경부고속도로가 횡단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
지석묘(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0호 . 충북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685-2)
우리나라 선사시대에 속하는 청동기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덮개돌인 개석을 받치고 있는 받침돌이 땅위에 세워져 있어 그 내부가 시체를 넣는 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1980년 2월 28일 대청댐 수몰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입석(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6호 . 충북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944)
선돌은 마을입구에 세워 재앙을 막는 수문신 또는 마을의 풍농 평안을 지켜 주는 수호신 역할을 한 신체로 믿어진다. 선돌의 중간부분에는 쪼으기 방법으로 지름이 90cm 되는 둥근 원의 기하학적 무늬를 선각하였다. 이는 임신부를 나타낸 것으로 여겨져 생산신, 출산신적 상징의 신앙 양상을 엿볼 수 있다.
사서공영정(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1호 . 충북 옥천군 동이면 금암리 77)
조선 14대 선조 때의 문식 전식(全湜) 선생의 영정으로 문관제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 좌측을 바라보고 있는 자세의 초상화를 모시 바탕에 그려서 비단으로 배접한 136cm × 92cm 크기의 족자이다. 당초의 화상은 단묵화 하였는데 뒤에 가색하여 얼굴과 가슴부분을 다양하게 보색하였다.
양신정(충청북도 기념물 제29호 . 충북 옥천군 동이면 금암리 76)
양신정은 1545년 인종 원년 송정 전패령이 밀양부사를 그만두고 고향에 와 있을 때 본인이 독서도 하고 글도 가르칠 수 있도록 목담호수가에 세운 것으로, 1597년 선조 30년 병화로 불타 없어진 것을 1620년 광해군 12년에 다시 지었으나 1733년 영조 9년에 무너졌던 것을 1828년 순조 28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청마리탑신제당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호 . 충북 옥천군 동이면 청마리 872-1)
이 제신당(祭神堂)은 마한시대(馬韓時代)부터 마을경계 표시로 수문신과 풍수상의 액막이로서의 구실을 하여 왔으며, 마을의 풍년과 동네의 평안을 비는 신앙성표로서 믿어왔다. 마을에는 매년 음력 정초에 날을 잡아 탑신제, 짐대제, 장승제, 용왕제를 매년 음력 보름날 탑과 짐대 장승의 순으로 제를 올린다.
가볼만한 곳
금강휴게소(동이면 조령리)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는 지난해말 주차와 휴식기능을 대폭 보강한 최첨단 시설로 새단장을 마치고 개장했다. 금강휴게소는 굽이치는 금강과 울창한 산림이 어울린 빼어난 경관을 갖춰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게소로 인기를 끌었다. 건물 외부에는 승용차 350대를 한꺼번에 세울 수 있는 대형 주차장과 소나무 그늘과 연못 등이 어울린 미니공원, 라이브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야외무대도 설치됐다. 이용객이 주변경관을 감상하며 편안히 휴식할 수 있도록 한쪽 벽면에 개폐식 투명유리가 설치됐으며, 유럽식 공간배치와 다양한 부대시설로 전시?공연이 가능한 신개념 휴게소이다.
*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옥천I.C와 영동I.C사이(서울에서 177㎞ 지점) 금강휴게소 서쪽 끝 검표소를 통해 금강유원지로 들어갈 수 있다.
면내마을
연주리/지수리/도덕리/청정리/화학리/도농리/종미리
소개
면적 31.78㎢, 인구 2,013명(2001)이 거주하는 안남면은 7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은 청성면, 서쪽은 안내면과 접하고, 남쪽은 금강을 경계로 동이면과 마주하며, 북쪽은 안내면 및 보은군 삼승면과 이어진다. 동쪽 경계에는 국사봉(國師峰:400m) 등 해발고도 300∼400m의 산지가 뻗어 있고, 북쪽 하마산(下馬山) 기슭에 있는 안남저수지의 수로를 따라 넓은 침식분지가 발달해 있다. 전형적인 산간분지인 연주리는 도농리와 함께 벼농사가 활발하다. 면 일원에서 느타리·오이·토마토 등 시설채소가 많이 재배되는데, 이중 느타리는 군서면과 함께 옥천군의 대표적인 산지이며, 그밖에 충청북도 보리재배단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제조업은 활발하지 않으나, 교통은 서부 지역으로 보은~금산 간 국도가 지나고 있어 옥천읍과 대전광역시 방면의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
경률당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2호 . 충북 옥천군 안남면 종미리 523)
조선 영조 12년(1736)경률 전후회가 마을입구에 서당을 짓고 자기의 호를 따서 경률당이라 하였다. 경율 전후회는 율곡 선생의 학덕을 숭모하여 율자를 즐겨썼다고 한다. 경률당은 후손들의 학문 연수와 인격수양의 도장으로 활용했으며 용궁전씨 종종의 친화 장소이기도 하다.
중봉조헌신도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3호 . 안남면 도농리 926-1)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묘소(墓所)로부터 동남방 100m 거리에 위치한 신도비 (神道碑)로 인조 27년(1649)에 건립되었다. 비의 규모는 비석높이 175cm 폭 100cm 두께 32cm이며 비문에는 선생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기록하였고 특히 최후의 격전지였던 금산(錦山) 싸움에 대하여 소상히 적혀 있다.
경주이씨 효열비각(사적)
옥천군 안남면 국사봉 아래인 도농리 소야마을 어귀 작은 언덕에 세워진 경주이씨 효열비각(慶州李氏 孝烈碑閣)은 1922년 무송유씨(茂松庾氏) 문중에서 경주이씨 효열의 얼과 행적을 후손에 널리 전하기 위하여 효열비와 목와조 다포(木瓦造 多包)집 2.5평의 비각을 세웠다.
독락정(사적)
문화재 자료 제23호(1998.6.26.지정)서기 1607년 조선 선조 40년 절충장군 중추부사<折衝將軍 中樞府事>를 지낸 주몽득<周夢得>이 건립한 정자로 후에 글을 가르치는 서당으로도 사용되었다. 1772년 중수한 이래 수차례의 보수가 있었으며 이 정자가 있는 마을의 이름도 독락정<獨樂亭> 이라 부르고 있다.
가볼만한 곳
둥실봉(충북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
옥천군 안남면 둥실봉에서 내려다본 한반도 모양의(혹은 호랑이가 포효하는 모습의) 지형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최근 남북화해무드와 더불어 통일한국을 기대하는 많은 국민의 염원을 이곳에서 마음속으로나마 이루어볼 수 있는 곳으로, 대청호의 수려한 경관과 어우러져 한반도모습이 펼쳐져 있고 특히 백두산 저 너머 만주벌판 중국, 소련 등이 실제모습과 같이 펼쳐져 있는 아주 특이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 찾아가는 길 : 옥천 에서 보은방면으로 대청호반도로를 끼고 약 15km를 달려 장계국민관광단지를 지나, 2km정도를 더 가면 조그만 다리가 나오는데(인포리) 이 다리에서 우회전하여 약6km를 더 가면 안남면 소재지가 나온다.
면내마을
현리/정방리/도이리/동대리/서대리/오덕리/인포리/장계리/방하목리/도율리/월외리/용촌리/답양리
소개
면적 64.32㎢, 인구 2,662명(2001)이 거주하는 안내면은 13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과 동쪽은 보은군의 회남면·수한면·삼승면과 접하여 군계를 이루고, 남쪽과 서쪽은 안남면·옥천읍·군북면과 이어진다. 산지가 많은 면내의 지형은 내천(川) 모양으로, 정간이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 경지가 빈약한 편이다. 밭이 많아 녹두·메밀 등의 잡곡과 감자·마늘·잎담배 등이 많이 생산되었으나, 최근에는 포도·복숭아·감 등의 과일류와 배추 재배가 활발하다. 특히 1982년부터 답양리 일대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영지는 안내면의 지역 특산물로서 연간 7억 원에 달하는 소득을 올리고 있다. 제조업은 옥천군의 다른 지역에 비해 덜 발달하였고, 교통은 보은~옥천간 국도 37호선이 면 내를 관통한다.
문화유적
후율당 (충청북도 기념물 제13호 . 충북 옥천군 안내면 도이리 181)
조선 선조 21년(1588) 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께서 보은 현감을 사임하고 옥천에 낙향하여 살 때 율곡 이이 선생을 경묘하여 그 뒤를 잇는다 하여 자신의 호를 후율(後栗)이라 하고 용촌 밤티에 담을 짓고 후율당(後栗堂)이라 하였다.
중봉선생 유상지석 (옥천군 안내면)
우리고장에 중봉 조헌 선생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묘소가 있는 안남면을 비롯하여 안내면에는 산골짝마다 중봉의 체취가 물씬 배어있음을 느낀다. 그 옛날 교통 문제도 교통 문제려니와 안내면 용촌으로부터 답양에 이르는 지역에 사람들이 거주했고 그 속에서 중봉 선생이 뜻을 품었다 하니 과연 정기 받은 땅이 아니랴 싶었다.
조헌 선생 ‘샘터’(옥천군 안내면)
옥천의 어느 곳을 가도 그의 숨결 배지 않은 곳이 있으리오. 조헌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옥천으로 낙향한 시기는 41세때인 1581년. 아직 임직 임진왜란의 기운이 무르익지는 않은 시간이었다. 중봉 역시 율곡 이이의 후학임을 자처하는 터라 왜(倭)의 침략이 있음을 예견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극락정토 ‘목조아미타여래좌상’(안내면 답양리)
안내면 답양리를 따라 채운산 깊숙한 계곡에 이르면 일출을 맞이하도록 자리 잡은 가람(절)을 발견할 수 있는데 임진왜란 때 중봉 선생은 의병을, 영규대사는 승병을 모집하였던 곳으로 유명한 가산사. ‘법당중수기’에 의하면 이 절은 신라 무열왕 때 화운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볼만한 곳
장계관광지(옥천군 안내면 장계리 산7-1)
안내면 장계리에 위치한 장계관광지 (대청비치랜드)는 대청호반의 아름다운 절경을 이용해 향토전시관, 모험놀이 시설, 사계절썰매장, 물놀이장, 인공폭포 및 연못, 분수대, 야외취사장, 휴게소, 식당 등을 조성하여 가족단위관광객 및 청소년의 휴식공간으로 명실상부한 종합관광지다.
* 찾아가는 길: 자가운전시 경부고속도로 옥천I.C로(좌회전)나와 보은방면 국도로 약25분가면 장계관광지가 나온다.
면내마을
산계리/거포리/장수리/궁촌리/소서리/삼남리/조천리/묘금리/고당리/합금리/양저리/구음리/대안리/도장리/능월리/화성리/장연리
소개
면적 845.01㎢, 인구 5만 7424명이다. 동쪽은 경상북도 김천시·상주시, 북쪽은 충청북도 옥천군, 서쪽은 충청남도 금산군, 남쪽은 전라북도 무주군과 접하여 3개 도의 접경지가 되고 있다. 남동부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달리는 산간지대로, 전체적으로 남동부가 높고 북서부가 낮은 지형을 이룬다. 남동부 산간지 북부에는 포성봉(捕城峰:933m)·지장산(芝庄山:772m)·추풍령(秋風嶺) 등, 남부에는 황악산(1,111m)·민주지산(眠主之山:1,242m)·각호산(角虎山:1,176m) 등이 험준한 산줄기를 이루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1만 995ha로 논은 3,619ha, 밭은 7,336ha로서 밭이 훨씬 많다. 주민의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며 호당 경지면적은 적은 편이다. 농업은 주곡생산을 위주로 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포도·사과·감 등의 과실류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영동군의 경부고속도로에는 용산면에 영동·황간 인터체인지가 있고, 도내·계릉 등의 터널이 있다.
문화유적
거포리 사지석탑 (사적)
청성면 거포리 거흠마을 절터에서 30여년전 청성면사무소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으며, 고려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1개의 옥신석과 2개의 옥개석을 세워 놓았는데, 옥신석 한 면에는 기둥을 양쪽에 만들고, 그 가운데는 좌불상을 새겼는데, 오랜 비바람으로 불상은 마멸이 심하다.
궁촌리 선돌 (사적)
이 선돌은 궁촌리 마을 앞 청심도로변 논 가운데 세워진 것으로 양쪽을 손질한 흔적이 있다. 충북 대학교 박물관장인 이융조(李隆助) 박사의 현지 고증에 의하면 오른손잡이가 손질한 것으로서 남성형 선돌이며 보존 상태가 아주 양호한 부락의 수호를 위하여 세운돌이라 하였다.
청송심씨 효부문 (사적)
옥천군 청성면 대안리 안티 마을 입구에 있으며 그의 효행을 널리 전하고 기리기 위하여 1908년 청성면 관내 주민들이 주선하여 세웠다. 효부심씨는 청성면 대안리에 사는 신기복과 결혼하여 나이 많으신 시부모 공양에 온갖 정성을 다하였으며, 시아버지의 기력을 돋우기 위하여 아침, 저녁으로 자기의 종아리를 때리게 하여 아프지 않으면 기력이 없어서 그렇다고 더욱 공양을 하였다.
면내마을
백운리/지전리/교평리/하서리/신매리/대덕리/장위리/한곡리/인정리/판수리/효목리/의지리/예곡리/삼방리/명티리/법화리/대성리/만월리
소개
면적 72.48㎢, 인구 4,913명(2001)이다. 18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은 경북 상주시 모서면, 서쪽은 청성면, 남쪽은 영동군 용산면, 북쪽은 보은군 마로면·삼승면에 접한다. 지형은 북서쪽 경계부의 삼승산(三升山:574m)·도덕봉(道德峰:544m)·만월령(萬月嶺)을 잇는 능선과, 남동쪽 경계부의 팔음산(八音山:465m)·천금산(千金山:762m)·천관산(天冠山:368m)을 연결하는 두 능선 사이의 중앙부에 동서 방향으로 길게 침식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분지의 중심에는 북쪽에서 유입된 보청천(報靑川)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어 관개에 편리하다. 주산물인 쌀·보리 생산 외에 조·콩·팥·수수·기장 등의 잡곡과 고추·인삼·잎담배·수박 등의 특수작물을 산출한다. 보은과 영동(永同)을 연결하는 국도가 남부지역을 지나고, 이 도로와 보은∼상주(尙州) 간 국도를 이어주는 지방도가 북부지역에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
청산향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8호 충북 옥천군 청산면 교평리 267)
청산향교는 태조7년 (1398)에 창건하였다가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자 선조35년(1602)에 백운동에 재건한 것을 효종5년(1654)에 지금의 교평리로 이건(移建)한 것으로, 명륜당과 서재, 대성전이 있다. 이 향교는 옥천향교와 달리 동·서무가 없으며, 공자를 주향하고 있다.
교평리 1호 고인돌(사적)
이 고인돌은 청산면 교평리 정수장 앞에 세 개의 고인돌이 나란히 있는 것 중의 하나로서 그 규모가 아주 크다는데 특징이 있다. 이 주변은 작은 능선이 뻗어 내려와 남향을 한 끝부분으로 양지바른 택지로는 아주 양호한 곳이기 때문에 한 곳에 나란히 세 개의 고인돌을 설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교평리 2호 고인돌 (사적)
교평리 1호 고인돌과는 6m 떨어져 있고 교평리 3호 고인돌과는 10m 떨어져 있어 이 고인돌이 중앙에 위치했던 것으로 짐작되며 이 고인돌 주변이 경작지인 관계로 조금 밀려나 10°정도 기울어져 있다. 이 고인돌은 다른 고인돌에 비하여 많이 손실되지 않은 모습이며, 머리는 방위 90°인 정동을 향하고 있다.
면내마을
건진리/장찬리/강청리/윤정리/의평리/개심리/평계리/수묵리/지정리/미동리/이원리/원동리/백지리/지탄리/용방리
소개
면적 66.37㎢, 인구 6,197명(2001)이다. 15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은 옥천읍, 동쪽과 남쪽은 영동군 심천면·양산면, 서쪽은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과 접한다. 대체로 면의 경계지역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옥천군에서 서대산(西臺山:905m)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대성산(大聖山:705m)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계곡이 T자형으로 발달함에 따라 면의 중앙부 곳곳에 형성된 하곡평야에서는 쌀·보리를 중심으로 한 주곡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묘목 산지로, 1939년 복숭아나무 묘목을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 배나무등 각종 묘목을 생산해 연간 140억 원이 넘는 소득을 올리고 있다. 공업은 그리 활발하지 않으나, 면내에 7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는 이원농공단지가 있다. 교통은 경부선이 북부지역에 동서로 가로질러 지나고 이와 나란히 서울~부산 간 국도가 달리며, 이원면에서 영동군 학산(鶴山)을 연결하는 지방도가 남북을 관통하고 있다.
문화유적
어름치 (천연기념물 제238호 . 충북 옥천군 이원면 칠방리 금강상류)
물의 깊이가 50 ∼ 70cm되는 곳에 자갈이 깔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서만 알을 낳는데 이때 강바닥에 구멍을 판 후 그곳에다 알을 낳고 잔돌로 탑을 쌓는데 이를 산란탑 이라 한다. 한강, 임진강, 금강의 상류에 서식하고 있는 희귀종으로 1906년 새로운 종으로 발표되었다.
송우암유허비 (충청북도 기념물 제45호 . 충북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134-2)
송시열 유허비는 단칸 팔각 기와집의 비각 안에 세워져 있으며 비좌는 합쳐 3m의 높고 큰 비로서 그 형태는 장방형의 비신(碑身)에 지붕모양의 비갓을 씌웠는데 앞면에는 해서(楷書)로 ‘우암 송선생 유허’(尤菴 宋先生 遺墟)라 썼고 뒷면에는 ‘숭정후 삼술 이월일’(崇楨後 三戌 二月日)이라고만 적혀 있다.
두암리3층석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0호 . 이원면 이원리 582-3)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을 형성하고 그 위에 상륜부(相輪部)를 장식한 일반형 석탑이다. 하층기단에는 각면에 3구씩의 안상이 조각 되었으며 갑석은 4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졌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각 한돌로 조성되었는데 초층 탑신에는 정면에 문비와 자물통이 조각되어 있어 주목된다.
경현당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 충북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53)
이 건물은 조선시대에 이지방의 초등교육을 실시하던 서당 건물로 용문서당을 경현당(景賢堂)이라 하였고, 숙종 23년(1697)에 서사인 경현당과 재사인 용문영당을 지었으나 재사는 허물어져 없어졌다. 서사건물은 홑처마 맞배지붕의 납도리집으로 오른쪽에는 마루 왼쪽에는 온돌을 꾸민 소박하고 검소한 구성을 하고 있다.
면내마을
동평리/금산리/사정리/상지리/은행리/사양리/상중리/하동리/오동리/월전리
소개
면적은 45.99㎢, 인구는 2,910명(2001)이 거주하는 군서면은 10개 리로 이루어졌다. 동쪽으로 옥천읍, 서쪽·남쪽으로 대전광역시 대덕구·금산군, 북쪽으로 군북면과 접한다. 충청남도와의 경계에는 망경대(望景臺:597m)· 망덕봉(望德峰:419m)· 국사봉(國師峰:389m)을 잇는 능선이, 동쪽 면계에는 용봉(436m)· 마성산(馬城山)· 장룡산(壯龍山)을 연결하는 능선이 각각 뻗어 있고, 그 두 능선 중앙을 옥천천(沃川川)이 북류하여 하곡평야를 형성한다. 1908년 군서일소면이라 하여 9개리를 관할하다 다시 13개리를 관할한 뒤, 1914년 군서면으로 바뀌면서 12개를 관할하였다. 1949년 성정리와 옥각리를 옥천읍에 넘겨 주면서 10개리를 관할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른다. 과수 재배가 성하고, 쌀·보리를 비롯한 주곡농업과 함께 특산물로 포도·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면의 북부에 서울과 부산을 잇는 고속도로·국도가 지나고, 보은-금산 국도가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
김영복 효자문(옥천군 군서면 금산리)
옥천군 군서면 금산리 증산 마을앞 울창한 숲 속 김영복(金永復) 효자문 앞에 작고 나지막한 옥금의 효녀문은 김영복 효자와 함께 불타 죽었기 때문에 참다운 충복이라 하여 1560년 명종15년에 효녀로 정려되어 목와조익공집 반 평 정도의 정문을 세위 함창김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사정리 청자요지(사적)
고려때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청자요지였다. 조선시대 비취색이 나는 고려순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 등 수많은 파편과 초벌구이 된 그릇 등이 수습되며 사선서나 대관서라 기재된 자기편이 수습된다는 것은 이곳 가마터가 관요지 였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겠다.
사정리 백자요지(사적)
여러 곳에 백자를 굽던 가마와 수많은 백자편과 기대(器臺)가 널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규모가 아주 큰 백자 가마터였으리라 사료된다. 여기에서 수습되는 백자편은 사발과 대접 등 주로 생활용구이며, 장식용 백자 등은 보이지 않는다.
가볼만한 곳
장용산 휴양림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금산리 산15-1)
해발 640m의 장용산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산으로 소나무, 단풍나무, 활엽수가 자생하고 있으며 가을단풍이 아름답다. 휴양림을 관통하는 금천 계곡은 맑고 깨끗하며 특히 야외수영장은 여름에 휴식공간으로는 최적지이다. 장용산에 위치한 용암사는 신라 진흥왕 13년에 의신 조사가 이곳의 산세를 보고 신비함에 감탄, 사찰을 창건하였다는 유래가 있다.
* 휴양림 관리사무소 (043) 733-9615, 730-3474
* 교통안내 - 옥천I.C →군서면(8㎞)→장용산휴양림
면내마을
이백리/자모리/증약리/대정리/항곡리/환평리/추소리/지오리/국원리/소정리/막지리/용호리/ 이평리/석호리
소개
면적 65.60㎢, 인구 3,349명이 거주하는 군북면은 14개 리로 이루어졌다. 옥천천 유역을 중심으로 하곡평야가 발달하여 쌀 등 주곡농업이 활발하고, 옥수수 등 밭농사도 이루어진다. 대전광역시에 인접한 자모리· 증약리 등을 중심으로 근교농업이 발달해 부추·상추·시금치 등 채소류 재배가 활발하며, 대전시장의 가격을 좌우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이 가운데 150여 농가가 재배하고 있는 부추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 특산물로, 연간 12억 원에 달하는 수확고를 자랑한다.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 서울~부산 간 국도가 남북으로 횡단하기 때문에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
이지당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42호 . 충북 옥천군 군북면 이백리 33)
조선조 중엽에 옥천에 사는 금, 이, 조, 안씨들이 합자해서 세운 각신서당으로 조헌선생의 친필로 된 ‘각신서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이 곳에서는 조헌선생께서 학문을 강론하였으며 그 후에는 송시열 선생께서 이고장의 영재들을 교육했었다.
청석교 (충북유형문화재 제121호 . 충북 옥천군 군북면 증약리 1068-3)
청석교는 660년 신라 문무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다리의 구조는 하천 바닥에다 크고 긴 돌을 눕혀 놓고, 그 위에다 사각형의 돌기둥을 두 개씩 세운 다음 얹침돌을 지르고 그 위에다 넓고 긴 돌을 얹어 놓아 다리를 만들었다.
청풍정(충북 옥천군 군북면)
군북면 국원리에서 우측으로 향하여 나 있는 길을 따라 대청호반을 따라 들어가 보니 4㎞ 남짓한 지점에서 작은 산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이곳으로부터는 낯선 곳이어서 이 마을 김씨(65) 할아버지의 길안내를 받으며 대청호의 수면 근처로 내려갔다. 위를 올려다보니 4m나 될까 한 지점의 충암절벽 위에는 명월암(明月岩)이란 세 글자가 음각되어져 있었다.
가볼만한 곳
부소무니 (충북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
군북파출소 밑의 조그만 터널을 통과하여 15번 국도를 따라 약10분 정도를 가면 대청호수가 빚어낸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곳은 예전에는 평범한 육지였으나 대청댐을 막은 후 물에 잠겨서 생긴 경관으로 대청댐 호수에 잠겨있는 육지속의 섬이라 할 수 있다. 기암괴석과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경관은 보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면 마치 병풍바위를 연상시킨다. 특히 이곳은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무료로 낚시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주말에는 가족단위로 낚시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 찾아가는 길: 옥천읍에서 대전방면으로 나아가는 4차선 국도를 타고 가다가 군북파출소 맞은편에 있는 조그만 터널을 통과하여 7km지점 추소리 마을의 금강자락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