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 in Media
-
대청호 옆 반딧불이 마을에 골프장이? [전국 인사이드]
-
- 작성자 : 관리자01
- 등록일 : 2025-05-21
- 조회수 : 5
대청호 옆 반딧불이 마을에 골프장이? [전국 인사이드]
산과 강은 말이 없다. 이 침묵을 기회로 여긴 이들이 불쑥 내민 삽 하나에, 소리 없이 무너질 뿐이다. 마을 주민들 사이로 반딧불이가 날던 땅. 충북 옥천군 동이면 지양리에 들어설 골프장은 그 풍경에 되돌릴 수 없는 흔적을 남기게 됐다.
2월27일, 충청북도 도시계획심의위원회는 27홀 규모 골프장 조성을 위해 지양리 산 56번지 일원의 부지에 체육시설 용도변경을 조건부 승인했다. 면적은 약 119만㎡로, 축구장 167개가 들어설 수 있는 규모다.
갑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2011년 초, 옥천군이 골프장 투자업체와 비공개 협약을 맺은 사실이 알려지며 지역사회엔 갈등의 불씨가 댕겨졌다. 땅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골프장으로 덮으려는 자들 사이, 행정은 방관했고 주민들은 3년여 세월을 차가운 거리에서 싸워야만 했다. 결국 최종 사업계획서 미제출로 논란은 흐지부지 끝났지만, 2023년 같은 업체가 다시 돌아왔다. 멈춘 줄 알았던 골프장 건립은 사실 지난 10여 년이라는 시간과 함께 조용히 흘러온 것이다.

그사이 옥천군은 옥천읍 오대리·동이면 석탄리·안내면 장계리와 안남면 연주리를 잇는 대청호 주변 지역을 국가 생태관광지구로 지정받았다. 기후위기 시대에 지역이 생태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듯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지역은, 골프장이 예정된 동이면 지양리와 맞닿아 있다.
변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골프장은 어느새 행정 수장의 공식 발언에서 지역 발전의 수단으로 당당히 거론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환경파괴와 특권의 상징이던 골프장이, 이제는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 아래 자연스레 수용된다. 인구 감소와 경제성장 둔화를 문제로 여기는 시선은 개발주의에 더욱 힘을 실었고, 공공성과 생태적 가치는 한낱 낭만처럼 밀려났다.
골프장 반대 목소리가 약해진 또 하나의 배경은 인구 고령화다. 10년 전 천막 농성장에 앉아 있던 이들은 이제 일흔, 여든을 훌쩍 넘겼다. 세월 앞에 장사 없듯 거리의 목소리는 희미해졌고 그 자리는 ‘경제 활성화’라는 포장이 대신했다.
생태 말하면서 생태 지우는 자기모순
그런 상황에서도 일부 주민들은 이 일대 생태환경을 직접 조사하며 목소리를 이어갔다. 오래전부터 서식 사실이 알려진 반딧불이는 물론이고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 멸종위기종인 붉은배새매와 새호리기, 애기뿔쇠똥구리, 하늘다람쥐, 삼백초 등이 잇따라 확인됐다. 골프장 예정 지역이 단순한 공터가 아님을 명백히 드러낸 것이다. 농약, 빛, 소음에 취약한 이들의 서식지는 곧 지역 생태계의 척도다. 경사지를 깎아낸 골프장 잔디 위에서 토사를 붙잡던 숲은 사라진다. 숲에 기대어 살던 생물들도 사라진다. 골프장을 ‘녹색 사막’이라 부르는 이유다.
450만 충청권 주민의 식수원인 대청호 역시 예외는 아니다. 골프장 잔디 관리에 필수적인 농약 사용은 수질오염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옥천군과 충청북도는 ‘조건부 승인’이라는 이름 아래 이 우려를 지나쳤다.
정작 옥천군은 이와 동시에 생태공원과 생태관광지구 재지정을 추진 중이다. 생태를 말하면서 동시에 생태를 지우는 자기모순의 장면이 겹쳐진다. 이 와중에 매년 3월 열리던 유채꽃 축제는 기후위기로 품종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고민도 흘러나온다.
27홀 골프장으로 설계된 이 땅 위. 숲과 경관, 생명이 사라지는 데 조용히 동의한 행정은 그 대가를 설명하지 않는다. 꽃 한 송이조차 지키기 어려운 시대에, 수십만 평의 생태계를 흔드는 대형 개발은 어떻게 정당화되고 있는가.
출처 : 시사IN 박누리 월간 옥이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