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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금강별곡 - 33. 대청호와 외래어종 확산
  • 작성자 : max.K
  • 등록일 : 2024-11-04
  • 조회수 : 93

발로 쓰는 금강별곡 - 33. 대청호와 외래어종 확산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추수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11일 오전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의 한 소류지. 물풀들 사이로 제법 많은 물고기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자세히 보니 외래어종인 블루길(파랑볼우럭)이었다.


얼마나 많길래 무리 지어 다닐까 궁금해 수중카메라를 넣어봤다. 잠시 뒤 카메라에 찍힌 장면은 놀라웠다. 소류지 물속에 블루길만 보였다. 대청호에서 블루길이 한창 극성부리던 1990년대 초반의 상황과 흡사했다.


한 낚시객이 있어 이렇게 된 사연을 아냐고 물었더니 마침 자신이 인근 마을에 산다며 뜻밖의 얘기를 들려줬다. 자세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꽤 오래전에 대청호 물이 송수관로를 통해 소류지로 유입된 후부터 블루길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가 완전히 점령했다고 말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소류지에는 역시 외래어종인 떡붕어도 득시글거린다고 했다. 떡붕어도 대청호 물이 유입되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단다. 또 이 마을에는 다른 소류지가 있는데 그곳 역시 대청호 물이 유입된 후 블루길과 떡붕어가 번져 장악한 상태라고 했다.


대청호가 그동안 외래어종 확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오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사례이다. 대청호 자체에도 외래어종이 유입돼 전역으로 번져나갔지만 이들 외래어종이 농업용수를 통해 다른 수역, 특히 댐 하류 수역의 소류지 등으로 확산하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댐 건설 직후부터 9종의 외래어종 유입


우리나라의 외래어종은 대부분 정부 주도 아래 미국, 일본, 이스라엘 등을 통해 들여왔다. 시기는 주로 196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까지 이뤄졌다. 대청호에는 댐 준공 직후인 1980년대 초부터 모두 9종이 유입된 것으로 각종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블루길, 떡붕어, 향어(이스라엘잉어), 큰입배스(큰입우럭), 백연어, 초어, 붕메기(찬넬메기), 무지개송어, 빙어가 대청호의 외래어종들이다. 이 중 빙어는 함경남도 용흥강과 항포를 주산지로 하는 어종으로 일제강점기인 1925년께부터 남한지역에 이식됐다.


대청호의 외래어종 유입과 관련해 일화가 전한다. 댐 준공식 무렵인 1980년 12월 어느 날 한 관변단체가 당시 대통령 부인을 초청해 대청호에 민물고기 치어 수만 마리를 방류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때 블루길 치어가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붕어·잉어 치어 수만 마리를 방류하려고 했지만 시기적으로 이들 어종의 치어를 생산할 때가 아니어서 급하게 구한 것이 블루길 치어였단다. 이 일이 알려진 뒤 주민들은 당시 대통령 부인의 이름을 따 이 물고기를 'OO붕어'라 불렀다.


일부 가두리 양식장, 외래어종 유입·확산 전초기지 역할


블루길에 이어 대청호에 유입된 외래어종은 떡붕어와 향어다. 떡붕어는 내수면 어자원 증식을 위해 방류됐으며 향어는 가두리양식장에서 길러지던 개체들이 이탈해 번진 것으로 전해진다.


대청호의 향어 유입과 관련해 1980년대 중·후반쯤 전에 볼 수 없던 진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향어를 기르던 가두리양식장 그물이 터지기만 하면 낚시객들이 향어를 잡으려고 모여들어 낚시대회를 연상케 하곤 했다.


큰입배스도 가두리양식장을 통해 대청호에 유입됐다. 1993년께 충북 보은군 관내의 한 가두리양식장에서 돌연 양식 중인 큰입배스를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방류하는 바람에 훗날 대청호가 '배스천국'으로 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대청댐 건설 이후 한때 활성화됐던 가두리양식장은 이처럼 외래어종의 유입과 확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일부에선 "국내 외래어종 유입 및 확산에 사실상 전초기지 역할을 한 것은 당시 외래어종을 길렀던 가두리양식장이었다"고 지적한다.



유입 초기부터 생태계 교란 '우려 목소리'



대청호가 들어선 후 얼마 안 가 외래어종들이 속속 유입되자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대부분 덩치가 크고 식성도 게걸스러워 이들이 정착할 경우 수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이 엄청날 것으로 걱정했다.


그러나 향어, 초어, 백연어, 붕메기, 무지개송어는 당초 우려와 달리 자연번식이 이뤄지지 않아 인위적 유입에 따른 후유증이 당세대에서 끝났다. 다만 유입된 개체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까지 종종 매스컴을 탔다. 잊을 만하면 뉴스를 통해 전해진, '대청호에서 초대형 물고기 출현' 소식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들 외래어종이었다. 1990년대에는 가끔 대청호 상류에서 몸무게 수십kg짜리 초대형 물고기가 잡혀 지게로 옮겨지기도 했는데 그 물고기는 초어였다. 그 무렵 어린아이만한 백연어도 잡혀 관심을 끌었다.


생태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블루길, 큰입배스, 떡붕어였다. 이들은 유입된 후 자연번식이 이뤄져 말 그대로 생태계의 점령군 노릇을 했다. 토종 물고기의 치어와 성어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알까지 먹어 치웠다. 상황이 이러자 블루길과 큰입배스는 생태계교란 야생생물로 지정돼 수입과 방류가 금지되고 퇴치 대상이 됐다.


기자는 1990년대 초부터 여러 차례에 걸려 대청호 현지 잠수부와 스킨스쿠버 동호인들의 도움을 받아 이들 외래어종의 물속 생활 장면을 관찰 및 촬영해 왔다. 매번 실감한 것은 외래어종의 놀라운 적응력과 서식지 장악력이었다. 블루길의 경우 대청호에 유입된 지 10여 년 만에 완전히 적응해 댐 유역 대부분을 장악했다. 큰입배스 역시 1993년께 유입된 후 빠르게 적응하면서 기존 수생태계 균형을 뒤흔들었다. 이들의 극성에 기존 수생태계의 정점에 있던 쏘가리마저 서식지를 내놓고 물러나 앉았다.


'대청호 잠수부'로 널리 알려진 이지승씨는 "대청호에 큰입배스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수몰된 집터, 바위, 고목 등이 있는 곳엔 으레 쏘가리가 진을 치고 있었는데 큰입배스가 들어오고 난 뒤부터는 그 자리를 큰입배스가 점령했다"고 증언했다.



토종 물고기의 유전자까지 오염 '가장 큰 문제'


외래어종의 유입에 따른 가장 큰 문제점은 국내 어종의 유전자 오염 문제다. 이 문제는 그간 학자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만 제기됐을 뿐 실제 확인된 사례는 없었다. 그러던 중 대청호에 유입된 떡붕어와 토종 붕어 사이의 잡종이 처음으로 확인돼 주목받았다.


대청호에는 외래어종인 떡붕어의 유입 이후 어부들이 '희나리'라고 부르는 새로운 붕어류가 나타났다. 희나리의 실체를 궁금해 하던 기자는 2005년 손영목(서원대 명예교수)·방인철 박사(순천향대 교수)에게 의뢰해 이 붕어류의 실체 규명에 나섰다. 그 결과 대청호의 희나리는 '유전적으로 떡붕어에 가까운, 토종붕어와 떡붕어 사이의 잡종임'이 밝혀졌다. 학계에 보고된 바 없는 국내 최초의 연구 분석 결과였다. 외래어종의 유입으로 지구상에 없던 잡종이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사례여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연구 분석에 참여했던 손영목 박사는 "시료로 사용한 각 붕어류의 옆줄비늘 수와 아가미갈퀴 수, 각 지느러미 수, 체고/체장비 등 여러 형질을 비교 분석한 결과 대청호의 희나리는 외래종인 떡붕어와 토종 붕어의 중간 형질을 가진 잡종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방인철 박사도 "유전자 분석을 통한 분자계통학적 접근을 시도한 결과 대청호에서 희나리로 불리는 종 미상의 붕어류는 유전학적으로 토종 붕어보다는 떡붕어 쪽에 가까운 잡종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출처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https://www.jbnews.com) 2024년 10월 31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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