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은 쌀개봉, 관음봉, 삼불봉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 능선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비나 눈이 떨어지면 동학사 쪽으로, 서쪽으로 떨어지면 갑사 쪽으로, 남쪽으로 떨어지면 신도안으로 흘러갑니다.
2020년 5월 27일에는 갑사를, 2021년 11월18일에는 남매탑을, 2022년 1월 2일에는 동학사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는 갑사금잔디고개-남매탑-동학사 구간을 몇 번 갔습니다. 젊은 시절과 최근에 간 기억을 살려 기록해 보겠습니다.
5월 갑사의 풍광은 온통 녹색지대입니다. 오리 숲에 들어서는 순간 맑은 내음이 코끝을 자극합니다. 아람드리 고목이 보이고, 이름 모를 큰 나무들이 길옆에 도열 해 있습니다. 어딜 보아도 녹색입니다. 큰 고목에는 동그란 구멍들이 보입니다. 새들의 둥지로 보입니다. 둥근 연잎 위에서 물방울이 굴러가듯 경쾌한 새소리들이 귓전을 울립니다. “호로로롱 호로로롱” 저 멀리 박새와 호반새가 보입니다.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 보니 노란 꽃들이 많이 보입니다. 녹색 줄기에 녹색 잎, 그리고 노란 꽃입니다. 노란 꽃잎이 다섯 장, 수술도 모두 노란색입니다. 녹색지대에 노란 꽃이 있으니 참 돋보입니다. 황매화입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5월, 온갖 꽃들과 나무들이 푸르름을 자랑하는 5월은 그야말로 계절의 여왕입니다. 오리 숲을 지나며 오른쪽 계곡을 보니 작은 연못이 보입니다. 돌로 보를 만들고 시멘트로 길을 만든 것을 보니 사람들이 만든 연못으로 보입니다.
이곳이 달문택(達門澤)입니다. 한자의 뜻을 풀어보면 ‘연못으로 가는 문을 통달했다’라는 뜻 같습니다. 이곳은 갑사 9곡에 속하는 곳입니다. 조선시대 말에 계곡물을 막아 연못을 만들고 배를 띄워 풍류를 즐긴 곳입니다. 계곡을 막아 연못을 만든 곳이라 낙엽들이 물에 쓸려 내려와 쌓여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풍류도 좋지만 흐르는 물을 막아두면 썩기 마련입니다.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 봅니다. 갑사 계곡은 수량은 많지 않지만 깨끗함을 유지합니다. 향기로운 공기, 숲이 많아서 그늘진 곳, 습도가 높은 이런 곳에는 이끼도롱뇽이 서식합니다. 동양에서는 우리나라에만 살고 있습니다.
갑사를 지나 경사진 계곡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금잔디고개가 나옵니다. 젊은 시절 금잔디 고개에 힘들게 올라오면 바로 마주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막걸리에 안주로 고추 삭힌 것을 파는 아줌마입니다. 땀을 내며 올라와서 시원하게 먹는 한잔의 막걸리는 참 맛있습니다. 요즘은 없겠지요?
이곳에서 떨어진 비나 눈은 갑사 옆 계곡을 지나서 하대천으로 들어갑니다. 이 물은 계룡저수지로 유입됩니다. 저수지를 나온 물은 노성천을 지나서 논산천으로 들어갑니다. 논산천 물은 젓갈 시장으로 유명한 강경포구 위에서 금강물을 만나게 됩니다. 금강물은 서해로 들어가지요. 드론을 띄워 이 물줄기를 본다면,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며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평평한 너들지대인 금잔디 고개를 지나서 동학사 방향으로 길을 재촉합니다
2021년 11월 18일, 느닷없이 남매탑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집에서 남매탑으로 가는 길은 버스를 한 번만 타면 됩니다. 11월 18일 오늘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일입니다. 동학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찬 바람이 불어옵니다. 11월 중순인데 산 중이라 그런지 공기가 매섭습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길옆 상가에는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합니다. 군밤 냄새, 군고구마 냄새…. 갑자기 배가 고파집니다. 부모님과 같이 온 아이들은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사 달라고 합니다. 인간의 본능 중 가장 중요한 기능이지요. 조금 더 올라가니 산채비빕밥 골목이 보입니다. 이곳도 역시 입맛을 자극합니다.
동학사는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많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일주문이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지붕 아래 색깔이 참 곱습니다. 오른쪽에는 동학사 계곡물이 힘차게 흐르고 산에는 나무들이 빼곡이 있습니다. 이런 계곡 옆에도 이끼도롱뇽이 살아갑니다. 이끼도롱뇽은 폐가 없이 피부로 호흡하며 2004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끼도롱뇽이 산다는 것은 그만큼 환경이 좋다는 이야기지요. 깨끗한 공기와 시원한 그늘, 그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꽤나 까다로운 조건에 사는 이끼도롱뇽은 그 지역의 환경을 나타내는 지표종이지요. 양서류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환경에서만 적응한 도롱뇽입니다.
2022년 1월 2일입니다. 최근에 해마다 저는 1월 1일에 계룡산과 동학사에 갑니다. 계룡산은 우리 집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맑은 공기와 싱그러운 자연이 좋습니다. 한때 신령스러운 산이라고 해서 무속인들이 많이 있었지요. 1월 1일에 산을 오르면서 새로운 기분으로 새해를 설계합니다
일주문을 지나니 동학사 초입에서 우측으로 가면 남매탑으로 가는 길목이 나옵니다. 옆의 계곡을 보니 온통 얼음으로 덥혀 있습니다. 영하 10도 추운 날입니다. 계곡도 작은 폭포도 모두 얼었습니다. 지난 봄, 여름, 가을까지 계곡 옆에서 살았던 이끼도롱뇽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아마 땅속 깊은 곳이나 바위 밑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겠지요?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사이로 푸른 물이 떨어질 것 같은 푸르른 하늘이 보입니다. 춥고 맑은 날은 더욱 푸르게 보입니다. 남매탑을 향해서 올라갑니다. 이곳은 돌이 참 많습니다. 초입부터 돌이 많고 계단도 많습니다.조금 올라가니 벌써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바로 남매탑이 보입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이상보 선생님이 쓰신 수필 ‘갑사로 가는 길’이 생각납니다. 신라 선덕여왕 원년에 상원대사는 계명정사 옆에서 수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호랑이가 나타나서 입속을 보니 목에 인골이 박혀 있어 대사는 이것을 빼주었다. 얼마 뒤 이 호랑이가 처녀를 한 명 물고 와 놓고 갔다. 이 처녀는 경상도 상주의 김화공의 딸 이었다. 상원대사의 인품과 성품에 반한 이 처녀는 부부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대사는 끝까지 수도에 정진하며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이에 의남매를 맺게 된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 이곳이 남매탑입니다.
잠시 고등학교 때 배운 그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국어 선생님께서는 감정을 넣어서 차근 차근 읽어 주셨고, 우리는 집중해서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곳을 40여 년 만에 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날리는 눈 사이로 보이는 남매탑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남매탑 옆으로 떨어지는 눈이나 비는 동학사 계곡을 지나서 용수천으로 갑니다. 용수천은 돌고 돌아서 세종특별자치시로 들어갑니다. 이곳에서 금강과 만나서 공주, 부여를 지나 강경에서 다시 논산천과 만나지요. 동학사 계곡, 갑사 계곡, 용수천, 논산천, 금강에는 남매탑의 전설이 흐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