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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천 갈대숲은 왜 슬픈가
  • 작성자 : 관리자2
  • 등록일 : 2009-12-04
  • 조회수 : 4613
서화천 갈대숲은 왜 슬픈가
고인 물에 생긴다는 갈대 무성, 쓰레기 처리에 몸살
 
2009년 12월 04일 (금) | 옥천신문 박진희 기자 ojp@okinews.com
 

'강물은 제대로 살아 흐르는 것일까' 군서면의 젖줄 서화천을 따라 걷는 내내 샛강탐사단은 의문을 떨쳐내지 못했다. 고속철도 공사를 비롯해 금산과 옥천을 잇는 37호선 국도 공사가 걸어도 걸어도 시야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물을 정화하는 고마운 역할을 하면서 그 모습 자체로 아름다운 갈대숲도, 물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생긴 퇴적물에 조성된 것이란 지적에 한숨이 나왔다. 늦가을과 초겨울의 아름다움을 가득 품은 서화천, 그러나 씁쓸할 수밖에 없었던 서화천 샛강탐사는 군서면 상지리 지경소마을에서 시작됐다.


   
▲ 서화천 곳곳마다 아름다운 갈대숲이 장관을 이뤘다. 하지만 물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곳에 쌓인 퇴적물에서 갈대숲이 생긴다는 배경을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수 만은 없다.



쓰레기 무덤에 몸살 앓는 서화천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는 소설(小雪)인 지난달 22일, 샛강탐사단은 군서면의 젖줄 서화천을 찾았다. 서화천은 대청호로 흘러 들어가는 상류하천으로 표지판에는 발원지가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국사봉으로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옥천신문 이안재 대표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선생이 쓴 '대동지지(大東地志)' 옥천 편 '산수(山水)'를 근거로 "행정기관에서 쓰는 소옥천은 잘못된 표기로 서화천이 맞고 발원지 역시 국사봉이 아니라 금산군 만인산"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고장 서화천의 시작은 금산과 옥천, 충남과 충북의 경계인 군서면 상지리 지경소 마을이다. 경계에는 늘 긴장이 따르기 마련인데 이 마을 역시 나라에서 무슨 사업이 벌어질 때마다 도계교를 중심으로 양쪽에 위치한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성당리와 상지리 사이의 신경전이 요란했다고.

"한창 집집마다 슬레이트 지붕을 올릴 때 저쪽은 하는데 이쪽은 안 해 준다 말이 나오고 그랬어. 그래도 예전에는 대보름 때에 다리 위에서 만나서 두 마을이 같이 놀이도 하고 그랬다는데 지금은 그런 건 없지."

마을의 살아있는 증인 김홍영(66)씨는 탐사단을 이끌더니 도계교 교명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한다. 일본식 연도표기인 '소화 5년'이라고 적혀 있어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주변에는 신기하게 자연산 갓이 자주 눈에 띈다. 크기도 엄청나지만 한 잎 베어 문 그 맛이 몇 시간이고 속에 맴돌며 진동을 한다. 안내면에서 온 박효정씨와 김영주씨의 손이 바쁘다. 신기하기도 하고 김장거리로 쓴다며 품안 가득 갓을 캤다.

하지만 작은 발견에 대한 기쁨도 잠시, 갓이 풍성한 강둑에서 눈을 떼 반대편을 바라보니 인상이 찌푸려진다. 장마철에 떠내려 온 폐비닐과 각종 쓰레기가 미처 치워지지 않아 나뭇가지에 빨래처럼 축 쳐진 채 걸려있다. 이 을씨년스러운 장관(?)은 탐사 끝까지 이어진다.

청정 옥천이란 구호는, 그저 구호일 뿐이다. 마을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치우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매년 반복되는 쓰레기 행렬에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몸 바쳐 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게 군서 환경감시원들의 말이다. 보수 없이 환경정화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흥순 명예감시원은 희망근로사업을 통해서라도 일대 정화활동을 해야 한다고 제안을 하기도 한다.

탐사단을 슬프게 한 또다른 광경은 강둑을 따라 몇 걸음 떼지 못해 나타나는 쓰레기 무덤들. 쓰레기 처리비용을 내지 않으려 무단으로 버려진 쓰레기는 밥상, 침대 부품, 항아리 등 무궁무진하다. 은행리에 이르러 숨 한 번 크게 쉬자고 바라본 강가 정중앙에, 떠내려가지 않고 굳건히 서 있는 밥상이 눈에 들어오자 큰 숨 대신 헛웃음이 나고 만다.

"쓰레기 종량제를 없애야 돼요. 쓰레기를 모두 수거해 가면 사람들이 강이나 논밭에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없을 것 아니에요. 차라리 주민세에 쓰레기 처리 비용을 추가하고 모든 쓰레기는 수거해 가야해요. 그래야지 이런 불법쓰레기가 안 쏟아져요."

샛강탐사에 참여한 군서면 월전리 정자현 이장은 시종일관 종량제봉투 폐지를 강조했다. 외부에서 트럭을 끌고 와 야산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도 있어 골치가 아프다는 정 이장의 말에 마을 주민들의 근심이 배어나온다.



아름다운 갈대에 한숨짓는 이유

은행리에서부터 평곡리에 이르기까지 샛강탐사단은 낯선 광경에 미간을 찌푸린다. 서화천에서 시선을 떼 먼 산을 바라보자면 다른 곳에는 없는 특별한 것이 보인다. 수십 개의 철탑이 만들어 낸 철탑숲이다. 한 자리에서 셀 수 있는 철탑만 해도 20개가 넘는다. 오동리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대전 전력소가 보내는 전기를 전달하기 위해 여기저기 철탑숲을 세운데다 경부고속철도 공사와 옥천-금산 간 37호 국도 공사가 동시에 진행돼 만들어진 낯선 시골 전경에 오히려 서화천이 어울리지 못한다.

철탑을 뒤로하고 샛강탐사단은 트럭에 몸을 싣고 경계를 넘어 군서면 월전리로 향한다.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흥망성쇠를 결정지은 우리고장에서도 특히 그 역사의 현장에 가까이 있었던 월전리. 구진벼루, 염쟁이, 사진바위 등 전쟁과 관련된 이름이 지역 곳곳에 남아있어 잠깐 동안 역사기행을 떠난다. 4개의 진이 있었다 해 이름이 붙은 사진바위, 사진벼루 끝자락에 죽은 병사들의 시신에 염을 했다는 염쟁이, 성왕이 이끈 백제군이 죽음을 맞이한 구진벼루(구천벼랑) 등 마을 곳곳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채우고도 남는다.

대청호에 한 층 가까워진 서화천을 만나기 위해 찾은 곳은 군북면 이백리 이지당. 군서면 상지리부터 줄곧 그림자처럼 따라오던 갈대숲은 이곳에서 최고의 절정을 만난 듯하다. 조헌 선생과 송시열 선생의 흔적이 머물러 있는 이지당 앞을 흐르는 서화천은 반 물, 반 갈대가 된다. 이지당을 찾은 한 쌍의 연인이 수북이 쌓인 낙엽과 갈대가 울창한 서화천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갈대숲이 보기에 더없이 좋지만 대청호 주민연대 신한중 대표는 여기에 살짝 시름을 얹어 놓는다.

"갈대는 물을 정화하는 기능이 있어서 강에 이로워요. 하지만 왜 갈대숲이 생기느냐를 생각해 보면 물이 천천히 흘러 퇴적물이 쌓이기 때문이에요. 갈대숲이 보기에도 좋고 좋은 역할도 하지만 갈대숲이 생기는 배경을 생각하면 조금 씁쓸하죠."

   
▲ 장마철에 떠내려온 폐비닐과 각종 쓰레기가 나뭇가지에 빨래처럼 축 쳐진 채 걸려 있다. 샛강탐사의 시작인 상지리부터 군북면 이백지 이지당까지 이 을씨년스러운 장관이 이어졌다.

   
▲ 군북면 이지당에 들어서기 전하수종말처리장 인근 하수구에 들렀다. 간이시험 결과COD(화학적 산소요구량)가20~50ppm으로 추정돼 표지판에 방류수질이라고 게시한 6.8pm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생태습지로 전환 맞은 서화천


실제 이지당에 닿기 직전 하수종말처리장 인근 하수구에서 나오는 물빛이 심상치 않아 잠깐 차에서 내려 간이시험을 해보니 강물이 화학반응에 흐린 녹색을 띈다. COD(화학적 산소요구량, 유기물의 오염물질을 산화제로 산화할 때 필요한 산소량으로 숫자가 클수록 물은 오염이 심하다)가 20ppm에서 50ppm 사이로 보이는데 표지판에는 '10월 수질검사 6.8'이라고 게시돼 큰 차이를 나타낸다.

서화천 수질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2007년 금강물환경연구소는 대청호의 조류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서화천을 지목했다. 물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고 강물이 정체돼 옥천하수처리장 등 상류로부터 내려온 오염물질이 쌓여 대청호 조류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당시 금강물환경연구소가 밝힌 분석 결과였다.

다행히 서화천은 내년 말까지 조성될 예정인 생태습지로 전환의 계기를 맞는다. 군과 금강유역환경청은 지난 6월 협약을 맺고 군북면 지오리 용목마을 7만여㎡에 갈대와 부들, 꽃창포 등 수질 정화 식물을 심어 생태습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옥천읍 구일리 구일저수지에도 3만8천653㎡에도 주민휴식공간을 갖춘 생태공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군서면 상중리가 고향인 차주현 군서면 산업개발담당은 생태습지도 좋지만 상류지역의 수질관리와 우리고장 내의 정기적인 하천정비작업 필요하다고 한다. 10개가 넘는 보 안에 쌓여있는 퇴적물을 거두어내 장마철 보가 범람하는 피해도 막고 맑은 물이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한다.

"예전에는 서화천 돌에 이끼가 끼지 않고 물도 맑았는데 80년대에 상류지역인 금산군 추부면에 기업체가 대거 들어서면서 많이 변했어요. 사람들은 갈대가 좋다고 하지만 하천정비를 잘 해서 언젠가는 갈대가 아니라 물이 잘 흐르는 모래톱을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샛강탐사에서 탐사단이 본 서화천의 얼굴은 탁한 물 위로 휘날리는 폐비닐, 아름다운 갈대숲 곳곳에 싸인 쓰레기 무덤, 수면 생태계에 산소가 부족해 숨이 막힌 강이다. 유쾌한 유랑은 아니다. 다만, 서화천에 다시 한 번 재생의 기회가 돌아온다는 기대와 '청정'을 외치는 옥천의 과제를 확인하는 것으로 일곱번째 샛강탐사를 마무리한다.

다음 샛강 탐사는 금천천이다. 본격적인 겨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여덟 번째 샛강 탐사 역시 강과 강이 흐르는 마을을 걷고자 하는 주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