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 in Media

예고없는 재앙, 기후 변화와 가뭄
  • 작성자 : 관리자2
  • 등록일 : 2009-11-26
  • 조회수 : 3434
<댁의 물은 충분하십니까?②>옥천군은 가뭄의 안전지대인가
2. 예고없는 재앙, 기후 변화와 가뭄
 
2009년 10월 09일 (금) | PDF (1000호) 옥천신문
 

< 연재순서 >
1. 물 문제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2. 예고 없는 재앙, 기후 변화와 가뭄
3. 누구를 위한 수계법인가?
4. 물 관리 선진국을 찾아서 1
5. 물 관리 선진국을 찾아서 2


기자는 지난 호에서 '우리나라는 유엔이 정한 물 부족 국가다'라는 일반적인 상식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밝혔다. 이를 통해 물 문제는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 즉, 관리의 문제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정치적으로 마사지된 물 부족 담론에서 벗어나 우리의 물 관리 실태를 정확히 알 때 올바른 정책이 나올 수 있다. 물이 차고 넘쳐날 때는 별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수도꼭지가 말라버린 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일상생활의 익숙한 풍경 하나하나가 끔찍한 악몽이 될 수 있다. 물이 말라버린 세상, 실제로 그 지옥 같은 경험을 한 태백시의 사례를 통해 우리고장 역시 가뭄 문제에서 예외가 아님을 살펴본다.

낙동강 발원지 태백의 가뭄
태백시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황지청솔아파트. 10개 동 1천327세대 주민들이 사는 이 아파트는 올 1월6일부터 4월2일까지 87일 간 이어진 제한급수 당시 가장 심한 피해를 본 곳 중 하나다. 지난해 겨울부터 시작된 가뭄으로 3개월 동안 아침, 저녁 하루 1시간씩 제한급수를 받은 아파트 주민들은 당시를 끔찍한 기억으로 떠올렸다.

고지대다보니 1시간의 제한급수가 실제로는 30분도 이어지기 힘들었고 그마저 저층 주민들이 물을 받는 동안 고층 주민들은 빈 수도꼭지만 바라봐야 했다.

이 때문에 민심은 흉흉해지고 차라리 가뭄을 피해 태백 바깥 지역으로 피난을 가는 주민들이 속출했다. 이 기간 동안 '최소' 2명은 가뭄에 대한 공포로 아예 이사를 갔다.

최의경 관리소장은 "가뭄 때문에 이사 간다는 집이 두 군데였는데 관리소에 말 않고 간 분들까지 치면 더 있을 수도 있다"며 "먹고 마시는 물은 둘째 치고 대소변을 볼 수가 없어 입주민들이 참 고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정연근(63) 통장은 "그 때 공포심이 노이로제가 돼 남아 있어 지금 물이 잘 나오는 데도 비상수를 받아 놓는 주민들이 많이 있다"고 전했다.

이 기간 동안 황지청솔아파트 주민들을 살린 것은 외지에서 공급된 생수다. 한 세대에 일주일에 생수 1박스(1.8ℓ*12병) 꼴로 14번 지원됐다.

생애 최악의 가뭄을 겪은 태백시. 하지만 태백시는 가뭄을 겪을 곳이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태백시에 물이 마른 적은 없었다. 태백시는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연못이 있는 곳이다.

아무도 예상 못했던 87일 간의 악몽
태백시 재난관리팀 박현모 가뭄 담당자는 "작년 겨울부터 봄까지 이어진 가뭄은 태백시에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며 "태백은 물이 풍부한 곳이어서 가뭄을 겪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태백은 전통적으로 풍부한 여름 강수와 겨울 함박눈으로 가뭄을 몰랐던 곳이다. 시의 재난 대책도 태풍이나 집중호우에 맞춰져 있었지 가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2008년 여름 태풍이 오지 않아 댐에 물이 마르기 시작하더니 이듬해 1월부터 하루 세 시간 제한급수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는 동안 주민들의 일상생활은 말도 못하게 피폐해지고 지역 경제는 휘청거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가장 큰 원인은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7년 9월~12월 강수량이 398.8㎜였던 것에 반해 2008년 같은 기간에는 4분의1 수준인 108.2㎜만 내렸다. 비가 적게 오는 것은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태백시 주민들은 87일 간의 악몽이 단순히 비가 적게 왔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뭄 당시 비상대책위원회 주민 대표를 맡았던 함억철씨는 "태백시의 경우 상수도 누수율이 48%에 이르는 등 물 공급 자체에 문제가 많았고 가뭄 초기 당시 정부나 관련 기관의 지원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함씨는 "당시 태백 주민들은 극심한 고통으로 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미온적인 자세를 보였고 대체 수자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국토해양부와 수자원공사는 각각 자신들의 이권에만 눈이 어두워 저수지를 만들자는 주장과 소규모 댐을 만들자는 주장으로 대립할 뿐 실제 어떤 정책 집행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 사이 지자체는 뭘 하고 있었을까?

태백시는 수십 차례 정부와 관련 기관에 지원을 요청하고 대책 회의를 열었지만 별다른 뾰족한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태백시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전국 451개소 각종 기관 단체에서 보내온 36만여 병(2ℓ 기준 27만 여 병)의 생수였다. 지자체부터 정부까지 우왕좌왕 하는 동안 국민의 온정이 태백시민을 살린 것이다.

   
▲ 태백시에 마려된 상징 조형물 '물, 물 한방울'의 모습. 태백시 주민들은 가뭄 기간 전국에서 보내온 생수를 통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페트병을 이용한 상징 조형물을 만들어 이를 기념하고 있다.

우리고장에도 지독한 가뭄 올까?
태백에 일어난 가뭄이 우리고장에서는 일어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옥천은 올봄에도 면 지역 오지마을과 고지대를 중심으로 심각한 가뭄 피해를 입었다. 인구의 상당수가 몰려있는 읍 지역은 상수도가 상시적으로 공급돼 아직까지는 물 부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지만 일부 오지마을 주민들에게 물 부족은 해마다 되풀이 되는 고질적인 문제다.

안내면 월외리 어효경 이장은 "그동안 계곡수를 받아썼는데 지난해부터 비가 적게 오며 가물더니 그 때문에 올봄에 주민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며 "지금은 군에서 새로 지하관정을 파고 수질검사를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비단, 월외리 뿐만 아니라 우리고장에는 현재 150개가 넘는 마을이 계곡수나 지하수 등을 이용한 마을상수도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옥천군은 2025년까지 연차적으로 마을상수도를 지방상수도로 전환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매일 물을 써야 하는 주민들 입장에서 2025년은 너무 멀고 먼 시간이다. 그 사이 몇 번의 가뭄이 지역을 덮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더구나 2025년에 모든 마을상수도가 지방상수도로 전환되는 것도 아니다. 50여 개 마을은 그대로 존치된다. 지난해 작성된 옥천군수도정비계획에 따른 내용이다.

봄 가뭄이 심했던 올해 옥천군은 동이면 우산리 지매마을, 안내면 도촌리, 월외리 등에 19개의 지하관정을 새로 개발했다. 늦게라도 대체수자원을 개발한 것은 다행이지만 사후약방문이란 비판을 면키는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재난관리연구소 김겸훈 교수 같은 물 전문가들은 지하수 관정 개발 자체도 신중한 접근을 요구한다.

김 교수는 "지하수는 땅 밑의 물을 끌어 쓸 수 있는 반면 조금만 관리를 잘못해도 그 속으로 오수가 들어가 지하수 전체를 이오염시킬 수 있어 주민들에게 도리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덮어놓고 무조건 뚫을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가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주민들에게 양질의 상수도를 공급하는 것이다. 태백시의 경우 상수도 보급률이 98%에 가까운데도 이번 가뭄을 겪었다.

우리고장의 상수도 보급률은 2008년 기준 약 77%로 군 지역 중에서는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전체 상수도 중 3분의2 가량이 옥천읍과 이원면에 편중돼 있어 나머지 면 지역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심각한 불균형에 처해 있다. 옥천군의 경우 상수도 누수율은 9.9%로 양호한 편이다.

강수량 5년 새 절반 줄어
가뭄이 면 지역 일부 오지마을의 문제만은 아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있는 옥천읍도 예외는 아니다. 태백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가뭄이 장기화할 경우 모든 주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

우리고장 강수량 감소는 이미 현실이 됐다.

최근 몇 년 간 우리고장 강수량을 살펴보면 △2003년 1천993㎜이던 것이 △2004년 1천390㎜ △2005년 1천286㎜ △2006년 1천326㎜ △2007년 1천559㎜ △2008년 870㎜로 2003년 이후 어느 정도의 등락은 있지만 꾸준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 1월부터 9월까지 강수량은 900㎜ 수준으로 현재와 같은 추세를 유지한다면 겨울 가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5월(112㎜)과 7월(436㎜)을 제외하면 100㎜를 넘긴 '달'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강수량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관리하기가 어렵다.

   
▲ 2003년~2008년 옥천군 강수량 (단위:mm, 출처: 2008 옥천군 통계연보)

반면, 옥천 군민의 급수 사용량은 △2003년 294만3천787㎥에서 △2008년 303만7천461㎥로 증가했다.

여기에 옥천군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청산산업단지를 비롯한 옥천읍 가풍리 의료기기· 전자농공단지와 옥천읍 제2산업단지 등이 활성화될 경우 막대한 양의 공업용수가 필요하다는 것도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편중된 상수도 보급과 대체 상수원 개발부진, 강수량의 감소, 향후 대량 물 소요처의 확대 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리고장 가뭄 대책은 어떤 수준일까.

올 봄 가뭄 당시 옥천군은 전광판과 홈페이지를 이용한 물 절약 홍보 등을 펼친 바 있고 앞서 밝혔듯 가뭄으로 피해를 겪은 오지마을에 지하수를 새로 판 정도다. 만약 옥천군 전 지역에 석 달 이상 생활용수가 공급되지 않을 정도의 가뭄이 지속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태백시는 한 번도 가뭄을 겪지 않았던 곳이다. 자연 재해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